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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다시 쓴다
샘 파르니아 & 조쉬 영 지음, 박수철 옮김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죽음’은 제가 오랫동안 쥐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샘 파르니아교수의 <죽음을 다시 쓴다>는 제목만큼이나 매혹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죽음을 되돌리려는 의사들의 노력을 재조명하고 죽음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며 죽음 이후의 생명현상까지도 살피고 있습니다. 즉 ‘소생의학’과 ‘임사체험’에 관한 연구가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소생의학은 익사(溺死) 혹은 급성 심기능장애로 심장이 멎은 사람의 심장기능를 되돌리려는 의학적 노력을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일반에는 심폐소생술로 알려진 의학적 술기를 발전시키는 분야입니다.
올해 초에 같이 일하는 분들과 함께 대한심폐소생협회에서 주관하는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았습니다(http://blog.joins.com/yang412/13088893). 35년 전, 인턴 때 응급실에서 해본 이후로는 처음이었는데, 세월이 오래 흐른 탓인지 이론도 많이 바뀌고 장비도 간편해져 실생활 공간에서도 응급상황을 맞게 되면 누구나 심폐소생술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의학드라마를 보면 할 만큼 했다고 하면서 중단할 것으로 권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만, 그 할 만큼 했다고 하는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지는 것 같습니다. 심정지로 인하여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심폐소생술을 중단해도 좋다는 권고가 마련되어 있는 정도로,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결정하게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죽음을 다시 쓰다>에서는 놀라운 사례들을 볼 수 있습니다. 뉴욕 장로교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였을 때 심장이 멎은 운전기사 조 티랄로시를 살리기 위하여 의료진은 40분이 넘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 뇌손상없이 가족들 곁에 돌아갈 수 있었던 사례를 비롯하여 추운 날 길에 쓰러져 저체온증에 빠진 이룬 베이슨이 병원에 도착해서 심정지가 일어났는데, 무려 3시간 반에 걸친 심폐소생술 끝에 역시 인지장애 없이 사회에 복귀한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의 공통점은 자연상태에서 혹은 심정지 발생 이후에 저체온을 유도하여 뇌세포의 대사를 떨어뜨려 손상을 억제할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최근에 개정된 심폐소생에 관한 기준에서는 저체온의 효과에 대한 근거가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심장박동이 정지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던 심장사에서 인공적으로 심장을 뛰도록 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신체기능을 총괄하는 뇌의 기능이 중단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는 뇌사로 바뀐 사망의 정의에 대하여도 뇌사의 기준을 적용하는데 있어 한계가 드러나는 사례들이 간혹 발표되고 있다는 사실과 산소공급이 차단되면 빠르게 사멸한다고 알려진 뇌세포 가운데 일정 시간이 경과된 다음에 적절한 상태에서 배양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뇌세포의 생존만으로 뇌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죽음의 정의를 뇌사에서 뇌세포사의 수준으로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의 두 번째 핵심주제는 ‘임사체험’에 관한 의학적 연구 수준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실 임사체험을 다룬 책을 몇 권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제프리 롱과 폴 페리가 같이 쓴 <죽음, 그 후; http://blog.joins.com/yang412/12832081>에서는 임사체험의 사례연구를 통하여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자는 ‘임사체험은 그것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진짜인 것처럼 보였겠지만, 죽음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심리학적, 화학적 변화가 그런 환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도 있다’고 하면서 임사체험을 영혼의 존재 가능성을 연계하는 듯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심장정지 이후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 중에 대략 10~20퍼센트는 실제사망체험의 여러 가지 특징을 기억해내는 반면 나머지 80~90퍼센트는 아무런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점,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유체이탈을 입증하는 실험적 데이터가 없다는 점 등이 아직 임사체험을 과학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주장이라고 하겠습니다.
철학과 의학을 공부하고, 죽음, 인간의 정신과 뇌 사이의 관계, 임사체험 등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선도하는 전문가로, 어웨어 연구(AWARE Study, AWAreness during REsuscitation)를 이끌고 있는 저자의 독특한 점이 잘 녹아 있어 다루고 있는 주제에 관하여 의학적 인문학적 접근이 돋보인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