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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제로 - 분노와 폭력, 사이코패스의 뇌 과학
사이먼 배런코언 지음, 홍승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최근 들어 충동적으로 타인을 다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치밀하게 준비하여 불특정 다수를 연쇄적으로 살해하여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던지기도 합니다. 과거 싸이코패스(psychopath; 정신병질자) 혹은 소시오패스(sociopath; 사회병질자)가 벌이던 이런 사건들을 최근에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라는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이 저지른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은 사회적 규범이 없는 사람으로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의 가능성이 검토되어 왔습니다. 충동적 행동을 억제하는 세로토닌 호르몬의 수준이 낮은 선천적 이상과 관련되어 있다는 설명도 있고, 사회적 규범을 배우지 못하여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물에 떠있는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는 것이라는 후천적 요인에 관한 설명도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유년기의 불우한 환경이 심리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환경적 요인만으로 반사회성 인격장애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쪽으로 무게가 옮겨지고 있습니다. 반사회성 인격장애에 의한 범죄는 선천적 요인과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의학적 견해가 발전해오면서 이런 범죄는 범인이 앓고 있는 질환의 영향으로 생긴 점을 감안하여 처벌을 경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사건의 피해자를 비롯한 사회 일각에서는 법의 관용성을 악용하는 사례까지도 있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분노와 폭력이 충동적으로 표출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 싸이코패스의 본질을 뇌과학과 심리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해부한 사이먼 베런코언교수의 <공감 제로>를 소개합니다. 베런코언교수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실험 심리학 및 정신 의학부의 발달 정신 병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자폐증을 연구하고, 자폐증 아동들이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왔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는 공감능력을 연구하기 위하여, 설문을 통해 공감 능력을 자가 측정할 수 있는 공감 지수(Empathy Quotient, EQ)와 체계화 정도를 측정하는 체계화 지수(Systemizing Quotient, SQ)를 개발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에게서 공감 능력이란, 단지 있거나 없는 두 가지 상태가 아니라 공감이 완전히 바닥난 공감 제로(0단계)에서 충만한 6단계까지 연속되는, 총 7단계의 종형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는데, <공감제로>는 공감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싸이코패스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감사의 글에서 <공감제로>를 이렇게 요약하였습니다. “이제 <공감제로>에서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잔인해질 수 있는지와 정서적인 공감의 상실이 필연적으로 이러한 결과를 낳는지를 조사하려고 한다. 이 책에서는 공감의 신체적(뇌) 기반을 파헤치고 사회적, 생물학적 결정 요인들을 조사하며 예전보다 훨씬 더 깊이 파고 들어갈 생각이다. 또 공감의 상실을 초래하는 질병들 몇 가지를 면밀히 조사하며 더 광범위한 부분까지도 다룰 예정이다.(12쪽)” 특히 저자는 공감장애를 가지고 있는 자폐환자들이 장애에도 불구하고 잔인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고, 잔인성이 몇 가지 공감장애의 특징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공감부족과 잔인성이 결합한 형태의 사이코패스를 사회적 요인과 생물학적 요인이 같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악(evil)이라고 하는 인간의 잔인함의 극한 상태를 공감의 침식이라는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악마라 불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글에서 2차 세계대전 중의 나치의 만행을 비롯하여, 24년 동안 딸을 감금하여 강간하고, 딸에서 태어난 손자를 살해한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프리츨 사건(1984년 밝혀짐), 1994년에 콩고 반란군이 저지른 만행 등을 인용하여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살피고 있습니다. 개인이 저지른 범죄와 전쟁을 치루는 동안 인간이 보이는 잔인성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전쟁이나 권력집단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대규모 제노사이드에 대하여 다카노 가즈아키의 소설 <제노사이드; http://blog.joins.com/yang412/12853780>에서 정리한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교수가 <제3의 침팬지; http://blog.joins.com/yang412/12920729>에서 설명하고 있는 제노사이드의 원인은 그 정의만큼이나 어렵지만 이데올로기적 혹은 심리적 동기가 작용하는 경우와 이데올로기 대립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토지와 권력을 둘러싼 현실적인 이해대립이 있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공감은 타인이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을 파악하고 그들의 사고와 기분에 적절한 감정으로 대응하는 능력이다.(32쪽)”라고 정의한 저자는 “공감은 우리가 관심사에 외골수적으로 집중하기를 중단하고 대신 이심적으로 집중하는 방식을 채택할 때 일어난다.(32쪽)”고 하였습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여행을 떠나려고 기차를 탔는데 키가 작은 승객이 선반에 무거운 가방을 올리려 낑낑거리는 모습을 보면 당신은 선뜻 일어나 도와주십니까? 아니면 간섭하는 것 같아 내버려 두십니까? 물론 그 사람은 무거운 가방을 올리지 못해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누군가 도와주지 않을까 간절하게 바라고 있을 수도 있겠고, 혹은 자존심이 센 그가 스로로 해결하겠다는 투지에 불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도와주고서도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불쾌하다는 반응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타인과 감정을 공유하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복잡한 사회를 같이 사는 사람들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공감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면 사회생활을 잘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저자의 공감측정도구를 이용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특히 연령에 따라 성인의 경우 40개의 항목으로, 아이의 경우 27개 항목으로 된 설문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조사할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공감 지수(Empathy Quotient, EQ)를 바탕으로 공감기제의 수준을 0에서 6까지 일곱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레벨 0의 사람은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데, 그 중 일부는 살인, 폭행, 고문,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타인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단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어려움을 느낄 뿐이지 타인에게 해를 끼치길 원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지적을 받아도 별다른 느낌이 없다고 합니다. 레벨1의 사람도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되돌아보고 유감을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가진 공감능력은 충동적 행동을 제어할 수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레벨2의 사람들은 아직 공감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렴풋이 눈치를 채기 때문에 물리적 공격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레벨3의 사람은 자신의 공감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그 사실을 감추거나 보상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레벨4의 사람은 평균이나 그 이하의 공감능력을 가지는데, 그들의 무딘 공감능력이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다. 레벨5인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평균보다 아주 조금 높은데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다고 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기를 삼가는 편이고 다양한 관점을 참고하거나 고려하기 위해 결정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레벨6인 사람은 타인의 감정에 지속적으로 집중하고 그것을 살피고 지원하려 애를 쓰는 놀라운 공감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감지수를 통하여 사람들의 공감능력을 다양한 수준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를 활용하여 뇌 속에 있는 공감회로라고 하는 특정 부위의 작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덕분입니다. 어쩌면 <공감제로>를 읽는 분들이 신경과학에 기본적 지식이 없다면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일 것 같습니다. 공부를 조금 한 저도 최근에 바뀐 의학용어집을 참고하여 번역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읽기에 다소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공감회로에 참여하는 뇌 부위로는 안쪽앞이마겉질(내측전전두피질), 눈확이마겉질(안와전두피질), 이마덥개(전두판개), 아랫이마이랑(하전두회), 꼬리쪽이마띠겉질(미측전두대상피질)과 앞뇌섬엽(전측뇌섬엽), 관자마루이음부(측두두정접합부), 위관자고랑(후측상측두구), 몸감각겉질(체감각피질), 아래마루소엽(하두정소엽)과 마루엽속고랑(두정엽내구), 그리고 편도체 등 모두 열 곳입니다.
앞서 레벨 0에 해당하는 공감제로인 사람들 가운데 일부 사람은 살인, 폭행, 고문,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타인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 것처럼, 저자들은 공감제로가 부정적 요소와 긍정적 요소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저자는 정신의학에서 오랫동안 연구되어온 경계선 성격장애(B 유형), 사이코패스(P유형) 그리고 나르시스트(N유형)로 구분하고 각각의 대표적 임상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신병과 신경증 사이의 경계선에 걸치는 경계선 성격장애(B유형)는 초창기 아동심리학의 대상관계이론에 따라 부모가 자기 아이의 요구를 존중하지 않고 아이를 학대하거나 방임하는 경우에 생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B유형인 사람에서는 세로토닌 수용체에 대한 신경전달물질의 결합정도가 감소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연구결과 유년기의 부정적 경험들이 뇌를 변화시킨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는 사이코패스(P유형)인 사람은 처벌을 두려워하도록 배우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유년기의 장기적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의 증가를 가져와 종국에는 관련 부위에 손상을 입히게 되는데, 편도체의 활성이 지나치거나 이마겉질(전두피질)의 활성이 불충분해서 반응성 공격이 과민하게 나타나는 결과를 빚게 된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자기자랑과 자기과시로 타인을 불쾌하게 하는 나르시스트(N유형)은 자기중심적이기는 하지만 잔인한 행동을 할 가능성은 낮다고 합니다. N유형 역시 유년기의 감정적 학대가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추론하고 있는데, 그들의 외모나 재능에 대한 과대평가와 지나친 방임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보지만, 구체적 연구로서 뒷받침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최근에 종영된 드라마 <굿닥터>는 자폐3급과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 시온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아외과를 공부하는 의사로서 자리잡는 과정을 다루었는데, 자폐증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에서 시온이 보여준 모습을 생각해보면,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증후군이 공감제로의 범주에 들어가면서도 긍정적인 점을 가지고 있다는데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공감에 어려움을 겪지만 정보처리 방식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인다는 점과 비도덕적이라 보다는 초도덕적인 면, 그리고 인지적 공감은 평균보다 못하더라도 정서적 공감은 온전하다는 점 등입니다.
이어서 저자들은 공감과 깊은 관련이 있는 감정인식을 담당하는 세 종류의 유전자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즉 세로토닌 수송체 유전자(SLC6A4), 바소프레신 수용체 1A 유전자(AVPR1A) 그리고 카나비노이드 수용체 유전자 1(CNR1)입니다. 물론 더 많은 유전자들이 공감에 관여할 것입니다만, 저자들은 이 세 유전자들의 유전자구성이, 뇌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반응하는 방식, 즉 공감의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다른 형태의 공감제로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점을 비롯하여 공감회로의 이상을 해석하는 방법 등 뿐 아니라,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공감이 결여된 상태임을 진단하는 등 많은 영역에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저자는 공감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자원 중 하나임을 설득하기 위하여(219쪽)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공감이 그러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제레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 http://blog.joins.com/yang412/12128887>에서 공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