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로 / 사유이미지 발터 벤야민 선집 1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외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독일의 유대계 철학자로 20세기 형이상학, 유대신학적 요소를 사적유물론과 결합시킨 독특한 사상가로 알려진 발트 벤야민의 저술을 처음 읽게 된 것은 생뚱맞게도 누군가 쓴 여행기에서 그가 쓴 글을 인용한 것을 읽고서였습니다. 좌파 아웃사이더로 인식되고 있지만, 문학이론, 미학, 철학, 인류학 사회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결과물이 정신, 사회과학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폭넓게 인용되고 있다는데 오히려 저의 시야가 좁았던 것 같습니다.

 

최성만교수님이 ‘발터 벤야민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글에서 “부유한 유대인 시민 가정의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그에게 강요한 것은 몰락해가는 계급 속에 갇힌 정체성, 사회로부터 차단된 정체성으로서 이는 어린 벤야민을 소외시켰고, 이 소외감을 극복하는 길을 그는 주로 책읽기에서 찾았다.(30쪽)”고 하면서도 “유복한 시민 가정의 보호막 속에서 자라왔기에 어린 벤야민에게 빌헬름 제국의 말기 계급적 갈등들은 대부분 은폐되어 있었고 파편적으로만 경험할 수 있었다.(31쪽)”고 적고 있어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교수자격 취득에 실패하고 특별한 직업이 없을 때, 신문과 잡지 등에 산문, 여행기, 서평을 기고하던 그가 1920년대 몰락해가는 독일 시민사회에서 받은 파노라마적 인상이나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철학적, 정치적, 문학비평적 관찰과 성찰들, 꿈, 여행기, 기억 등을 몽타주형식으로 엮은 철학적 아포리즘 모음집이 <일방통행로>라고합니다. <사유이미지>는 에세이와 산문단편들을 묶고 있는데 기지에 찬 사상적 통찰들만이 아니라 문체와 아방가르드적 형식이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모두 60편으로 이루어진 <일방통행로>는 ‘주유소’라는 제목의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마치 길거리를 따라 가로에 늘어선 다양한 가게의 간판, 벽보, 플래카드, 광고판, 쇼윈도, 번지수가 적힌 집들, 기타 공간들처럼 다양한 공간들의 열림과 닫힘, 멀어짐과 가까워짐의 모습들을 벤야민의 관상학적 내지는 현상학적 시선으로 ‘사유적인 이미지’로 읽어냈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인지 경우에 따라서는 작가의 시선이 멈추는 곳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방통행로>는 세 분의 옮긴이들이 완역을 했는데, <사유이미지>는 선집에 수록된 이야기 가운데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만 발췌하여 번역했다고 합니다. 일방통행로의 길을 거슬러 들어서본 적이 있습니다. 그것도 타국에서... 진입금지 표지를 보지 못했던 탓에 신호를 받아서 들어선 도로에서 마주선 차량이 놀란 표정을 짓는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도로상황이 복잡하지 않아 곁길로 빠지면서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일방통행로는 복잡한 도로상황을 고려하여 차량의 흐름을 유연하게 하는 효과를 기대하여 설치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작가는 자신의 사유의 흐름이 일정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일방통행로>라는 제목을 붙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이야기 ‘주유소’의 첫 번째 구절 “삶을 구성하는 힘은 현재에는 확신보다는 ‘사실’에 훨씬 더 가까이 있다.(69쪽)”의 의미를 깨닫는 일부터가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머리를 쥐어짜면서 읽어가다 보면 제목과 글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조차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좋은 산문을 쓰는 작업에는 세 단계가 있다. 산문을 작곡하는 음악의 단계, 그것을 짓는 건축의 단계, 마지막으로 그것을 엮는 직조의 단계가 그것이다(93쪽)”라는 이야기는 글을 쓰는 단계를 말하는 것 같은데 제목은 왜 ‘계단 주의!’일까요? 하나 더, ‘작가의 기법에 관한 13가지 명제’, ‘속물들에 맞서는 13가지 명제’, ‘비평가 기법에 대한 13가지 명제’로 구성된 이야기의 제목은 왜 ‘벽보 부착금지!’일까요? 혹시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소화물 운송 및 포장’이라는 제목의 글, “나는 아침 일찍 마르세유를 지나 역으로 간다. 가는 도중에 내가 잘 알고 있는 장소들,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장소들 혹은 흐릿하게만 기억나는 장소들을 마주치면서 그 도시는 손에 들려 있는 한권의 책이 된다. 나는 재빨리 몇 번인가 더 그 책을 들여다본다. 보관소에서 박스에 포장되어 언제 다시 이 책을 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140쪽)”은 주변을 잘 관찰하면 글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사유이미지>는 <일방통행로>에 비하여 비교적 의미파악이 쉬운 편인 것 같습니다. 특히 벤야민의 작가론이라고 할 수 있는 ‘훌륭한 작가’, ‘한번은 아무것도 아니다’, ‘글을 잘 쓴다는 것’ 등은 글쓰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