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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밤 ㅣ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21
알프레드 드 뮈세 지음, 김미성 옮김 / 책세상 / 2004년 11월
평점 :
알프레드 드 뮈세의 시집 <오월의 밤>을 붙들고 씨름했다는 한 독자는 “아주 오래 전이긴 하지만...나에게도 시를 사랑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왜 이렇게..요즘은 詩 읽기가 힘들까,”라고 리뷰에 적고 있습니다만, 저도 한 때는 시구절을 읊조리던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詩 읽기를 그만둔 것이 언젠가 조차 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뮈세가 라마르틴, 비니, 위고와 더불어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사실도 몰랐다는 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월의 밤>을 읽은 것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읽어보자는 의욕 때문입니다.
뮈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1>에 처음 등장합니다. 마르셀의 할머니가 설날에 마르셀에게 줄 선물로 루소의 작품과 상드의 <앵디아나>와 함께 골랐던 것인데 아버지의 반발로 상드의 전원소설들로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상드와 소문난 연애와 뒤따른 실연의 아픔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연작시가 어린 마르셀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셀이 친구 블로크와 나눈 이야기를 적고 있는 부분에서 뮈세의 「10월의 밤」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어느 시점에선가 뮈세의 시를 읽은 것으로 보입니다.
마르셀의 고백에 대하여 블로크는 “뮈세 선생에 대한 네 저속한 취미 따위는 이제 버려. 아주 위험한 녀석에다 기분 나쁜 작자야. 고백하는데, 그 녀석이나 라신이란 작자는 평생 동안 운율을 잘 맞춘 시구절 하나씩은 쓰긴 했지만, 그 시구절은 내가 보기엔 절대로 아무 의미도 없다는 데에 그 최상의 가치가 있어. 예를 들면, ‘하얀 올로손과 하얀 카미르(La blanche Oloosone et la blanche Camyre)' 그리고 라신의 ’미노스와 파지파에의 딸(La fille de Minos et de Pasiphaè)이라는 구절이지.(프루스트 지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쪽으로 1, 162쪽, 민음사 펴냄; http://blog.joins.com/yang412/12948920)”라고 혹평했다고 합니다. 사실 뮈세는 1833년 데뷔 초기 관심을 쏟던 낭만주의적 시작에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위고와 불화를 빚고, 이어진 상드와의 세상이 떠들썩한 열애도 1835년 파국을 맞은 상황에서 쓰여진 시들이 문단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847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올린 희곡 <변덕>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시도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프루스트 자신은 뮈세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은근히 자랑(?)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출판사의 리뷰에 따르면, “실연의 고통에 빠져 있던 뮈세는 ‘내 영혼 속에서 빠져나오고자 하는 무언가’를 느낀 오월의 어느 밤, 촛불로 온 방 안을 밝혀놓은 채 아침까지 쉬지 않고 시를 썼다. 그리고 그날 밤 그의 영혼에서 빠져나온 것이 바로〈오월의 밤〉이었다. 뮈세가 무려 112행에 이르는 시를 하루저녁에 써 내려갔다.”고 합니다. 영감이 손을 움직여 시를 쏟아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연의 아픔은 그에게 새로운 시의 세계를 눈뜨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고통 없는 시는 없으며 시인은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는 그에게 시란 ‘한 방울의 눈물로 진주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프루스트가 인용한 시 ‘오월의 밤’의 한 구절를 살펴보면, 절망의 나락에서 실연의 아픔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시인을 뮤즈가 위로하는 대목입니다. “오세요. 신 앞에서 노래합시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 잃어버린 환희 속에서, 지나간 고통 속에서 노래합시다. / 입맞춤을 한 채로 미지의 세계로 떠납시다. / 닥치는대로 당신의 생명의 메아리를 일깨웁시다. (중략) 색색의 나무가 우거진 펠리온 산꼭대기와, / 푸른 티타레스와, 백조가 떠다니는 물 위로 / 하얀 올로손과 하얀 카미르가 비치는 / 은빛의 만(灣)이 여기 있습니다.(78쪽)”
김미성교수가 옮긴 뮈세의 <오월의 밤>은 뮈세의 <신시집>의 분량이 너무 방대해서 전체를 완역하지 못하고 발췌해서 번역했다고 합니다. 시집의 말미에 뮈세에 관한 다양한 연구서들을 종합하여 시인과의 상인터뷰를 싣고 있어 뮈세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등장인물이 마치 대화하듯 시구절들을 배치하고 있는 형식이 매우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