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발한다 - 해제ㅣ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양심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7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사라진 알베르틴; http://blog.joins.com/yang412/12927835>에서 프루스트는 드레퓌스 사건을 두고 파리의 살롱가의 분위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참모본부에서 일어났던 간첩사건의 범인으로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드레퓌스가 지목되어 군사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는 과정에서 진짜 범인이 드러나면서 프랑스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던 반유대주의에 편승하여 진보와 보수가 갈려 오랫동안 대립하게 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데, 당대의 문인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격문 ‘나는 고발한다’를 로로르〈L'Aurore〉지에 게재한 것이 반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린 로로르지는 몇 시간 만에 30만부 이상 팔리면서 보수주의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학생, 작가, 예술가, 과학자, 교수들의 대대적 지지가 이어져 여론의 향방을 돌려놓게 되었다고 합니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하여 1897년 12월부터 1900년 12월까지 3년 동안 모두 13편의 글을 썼고, 1901년 이글들을 묶어 <멈추지 않는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는데, 이 가운데 ‘브리송씨에게 보내는 편지’와 ‘상원에 보내는 편지’를 뺀 11편을 옮겨 담은 것이 <나는 고발한다>라고 합니다. 구조적 폭력이 진실을 억누를 때마다 드레퓌스 사건이 인용되는 것은 좌파와 우파가 확연하게 구분되는 현대 프랑스 사회의 지식인 지도 및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라는 명제로 요약되는 프랑스 사회의 지적 전통이 바로 드레퓌스 사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난 것은 1894년임에도 불구하고 졸라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1897년 11월 25일 르 피가로지에 사건을 본격적으로 이슈화했던 쉐레르 케스트네르 당시 국회부의장에 대한 글을 실으면서입니다. 이어서 유태인의 ‘조합’이 드레퓌스 사건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는 보수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 그리고 대중을 오도하고 있는 언론의 행태와 모든 시민이 동등하다는 관용의 정신을 배신하는 반유태주의에 대한 졸라의 신랄한 비판의식을 담은 조서가 이어집니다. 르 피가로지가 보수측의 압박을 받아 졸라의 글을 더 이상 실을 수 없게 되면서 졸라는 ‘청년에게 보내는 편지’와 ‘프랑스에 보내는 편지’를 팜플렛형태로 제작하여 판매하는 방식으로 투쟁을 이어가다가 로로르지가 나서면서 앞서 말씀드린 ‘나는 고발한다’는 제목으로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씨에게 보내는 편지를 싣게 되고 끓어오르던 분위기가 폭발하기에 이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편지가 계기가 되어 의회는 찬성 312표 대 반대 122표로 졸라를 기소하기로 의결하였는데, 표결결과를 보면 드레퓌스사건을 보는 당시 프랑스 사회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즉 보수적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은 “죄없는 한 인간이 악마도에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이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한 인간의 이익 때문에 온 나라가 이 같은 혼란에 빠져도 좋다는 말인가?(117쪽)”라는 분위기를 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프랑스는 언제나 정의롭고 아름다운 대의를 위해 스스로 불타올랐기 때문에, 우리는 전 프랑스 앞에서 우리가 군대의 영예, 국가의 영광을 원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사법적 오판이 저질러졌다. 그리고 그 오판이 수정되지 않는 한, 프랑스는 마치 암에 걸린 것처럼 자기도 모르는 새 조금씩 썩어가리라. 만일 프랑스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도려내야 할 환부가 있다면, 반드시 그 환부를 도려내기를!(42쪽)”를 명분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졸라는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고발한다>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기념비적 작품에 머물지 않고 오늘 날까지 진실을 가리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행동하는 양심을 일깨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 믿습니다. 옮긴이께서는 한국 사회에서, 그리 오래되지도 않은 지난날, 보안사령부, 중앙정보부, 안전기획부 등 서슬 퍼런 국가 안보기관들에 의하여 자행된 일들을 기억하자는 말씀을 하였습니다만, 우리나라도 이제는 구 차례에 걸친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민주화된 국가임을 볼 때, 진보가 옳고 보수는 그르다는 전제가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쪽이던지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에 대해서도 양심세력은 분연히 떨쳐 일어나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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