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밀짚모자 지만지 고전선집 632
외젠 라비슈 지음, 장인숙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제대로 읽기 위한 공부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파리의 연극무대가 사교계 인사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고, 사교계의 화제로 떠오르기도 합니다. 1851년 마르크 미셸과 공동으로 집필한 <이탈리아 밀짚모자>는 프랑스 희곡작가 회젠 라비슈(1815-1888)에게 대중적 인기와 작품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후 20~30년간 발표된 그의 희곡의 원형이 된 보드빌의 새로운 형태가 된 작품이기도 한다는데, 다음백과사전에 의하면, “보드빌은 18세기 초에 직업배우들이 '코메디 프랑세즈'가 장악하고 있는 연극 독점권을 피하기 위해 채택한 편법을 가리키는 연극용어가 되었다. 정통연극을 공연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대중가요 가락에 붙인 가사와 춤으로 극의 줄거리를 해석하는 무언극으로 연극을 공연했다. 이것은 결국 보통 연극처럼 대사를 말하면서 사이사이에 노래로 변화를 주는 일종의 가벼운 뮤지컬로 발전하여,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한편 1890년대 중엽에서 1930년대 초 사이에 미국에서 인기 있던 가벼운 연예 쇼를 지칭하기도 하는데, 서로 연관성이 없는 10~15가지의 개별 공연으로 이루어지며, 마술사와 광대, 희극배우, 길들인 동물, 곡예사, 가수 및 무용수들이 출연한다고 합니다.

 

혹시 결혼을 앞두고 악몽을 꾼 경험은 없으십니까? 결혼식이 진행되는 도중에 누군가가 나타나 결혼식을 훼방놓는다거나, 아니면 결혼상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는 ‘런어웨이 브라이드’같은 황당사건을 겪지 않을까 걱정같은 것 말입니다. <이탈리아 밀짚모자>가 바로 결혼식 날 벌어진 한바탕 소란을 그리는 소극(笑劇)의 전형입니다. 옮긴이의 해설에 따르면, “희극은 항상 주인공이부딪히는 장애물과 작가가 면밀히 배치해 놓은 황당한 상황들을 가지고 관객의 웃음을 유발한다. 이 작품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상황적 요인들은 오인과 예기치 않은 만남에서 생긴다.(12쪽)”고 합니다. 우리말로 옮겨진 희곡을 읽어서는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만, 라비슈 희곡에서 보다 강력한 희극적 효과의 수단은 언어라고 합니다. 당시 보드빌에 사용된 언어는 나폴레옹 3세가 통치하던 사회의 중산층 부르주아들이 흔히 쓰던 것이었는데, 15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라비슈의 연극이 오지에나 뒤마 피스의 연극보다 더 각광받고 있는 까닭은 언어의 현대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대학시절 연극을 할 때는 몰리에르의 작품을 올리기도 하고 관극도 해보았습니다만, 라비슈의 희곡을 무대에 올린다면 우리 관객들도 아주 재미있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비슈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보마르셰나 사샤 기트리와는 대조적으로 등장인물에게 작가의 사상이나 담론을 주입하지 않고, 오직 은유적 재치가 번뜩이는 단어들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희극성을 극대화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젊은 나이에 연금을 받아 유유자적하는 주인공 파디나르는 어느 날 마차에서 우연히 마주친 종묘상의 딸 엘렌과 결혼하게 되는데, 전날 처가에 다녀오던 길에 벵센 숲속에서 떨군 은제 말채찍을 찾기 위하여 결혼하는 날 숲을 찾아갔다가 육군 중위와 밀회 중이던 아나이스의 밀짚모자를 타고간 말이 먹어치운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됩니다. 아나이스는 의처증이 심한 남편 보페르튀스의 채근이 무서워 다디나르를 뒤쫓아 밀짚모자를 내놓으라고 다그치고 파디나르는 같은 모양의 밀짚모자를 구하기 위하여 모자가게로, 그 모자를 사갔다는 남작부인집으로, 남작부인이 선물로 주었다는 조카딸 집으로 동분서주하게 되고, 마차 8대에 나누어 탄, 장인 노낭쿠르와 신부 그리고 하객들이 파디나르의 뒤를 쫓으면서 소동들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 작품을 무대에서 구현하려면 숨가쁘게 변하는 무대와 그 무대를 휩쓸고 다니는 출연진의 뒤를 쫓기에도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이 작품이 초연되던 날 너무 웃던 관객이 졸도해서 병원으로 실려 가는 바람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겠습니까?

 

재미있는 것은 주인공 파디나르가 모자를 구하기 위하여 모자가게에 갔을 때 만나는 옛애인이 “아니 어디있다가 오셨어요?”라고 물어보았을 때, 파디나르가 “소뮈르에서 왔소”라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지명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발자크의 소설 <외제니 그랑데; http://blog.joins.com/yang412/13237375>의 무대가 바로 소뮈르입니다. "지은 지 3세기가 지난 집들은 목조 건물임에도 아직 튼튼하며, 그 각양각색의 모양은 고고학자들이나 예술가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소뮈르 지방만의 독특함을 만들어내고 있다.(외제니 그랑데, 23쪽) 상황이 바뀔 때마다 결혼을 취소한다고 소리지르는 노낭쿠르를 따라다니는 사촌 보뱅은 ‘이 애 너한테 맡길게!’라는 삼촌의 말에 신이 났다가, 결혼식을 다시 거행한다는 말에 ‘변덕쟁이 노인네!’라고 중얼거리는 것으로 보아 엘렌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근친혼이 금기가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옥의 티도 있습니다. 타르디보의 심문을 받는 노낭쿠르가 “1998년 12월 7일 그로부아 출생”이라고 대답하는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당시로부터 150년 가까운 미래였을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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