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유예진교수님은 <프루스트가 사랑한 작가들; http://blog.joins.com/yang412/13111784>에서 “앙드레 지드와 프루스트를 연결하는 고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두 작가 모두 동성애자로 당시 터부시되고 소송감이 될 만한 행위를 각자의 작품에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출간한 <누벨 르뷔 프랑세즈>라는 문예지의 창간인이자 출판인이 앙드레 지드라는 사실이다.(202쪽)”라고 적었습니다. “지드는 (자신의 처녀작) <기쁨과 나날들>에서 후에 프루스트가 심혈을 기울여 쓰게 될 소설의 씨앗을 찾아볼 수 있다는 요지를 펼치고 있다.(216쪽)”고도 적었습니다만,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연배가 비슷한 지드의 작품을 인용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문학자 이성복교수님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지드의 <좁은문>을 분석한 글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은 두 작품이 사랑이라는 환상의 발생과 진행, 쇠퇴와 소멸에 관한 총체적인 보고라고 할 만하기 때문이라고 서문에서 적고 있습니다. “상극하는 것들의 화해 혹은 상생하는 것들의 불화로 이루어진 그 몸의 자리를 밝히고, 스스로 그 몸으로 남는 것이 좋은 문학의 본성이라면 이 두 작품 속에서 분석되는 사랑은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탐색하는 문학의 탁월한 길라잡이로 남을 것(6쪽)”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의 사랑은 믿음과 꿈, 욕망과 환상, 그리고 종국에슨 믿음의 소멸에 따르는 환멸로 귀결되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반면 지드의 <좁은문>에서의 알리사의 사랑은 해석이 어려울 정도로 모순을 안고 있다고 하는데, 알리사의 숭고한 희생과 비장한 절대추구를 찬양하는 것이라는 해석과 기독교에 대한 그릇된 이해 때문에 자신의 삶을 파멸로 몰아가는 시대착오적 인물이라는 대조적인 해석이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알리사를 사랑한다는 제롬은 알리사의 속마음을 읽어내지 못하고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좁은문>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공통점은 주인공들이 기억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또한 그 떡갈나무들은 나에게 기억 속의 풍경들을 현실에서 찾는 일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가를 보다 잘 이해하게 해주었는데, 그 풍경들의 매혹은 언제나 기억 자체로부터 오며, 감각을 통해서는 지각되지 않은 것이다. 내가 전에 알았던 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37쪽)”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요컨대 기억 속에 간직되거나 상상력에 의해 빚어진 내면의 실재들은 그것들을 매개한 현실의 대상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38쪽)”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프루스트가 어느 시점에서 화자의 과거기억을 바탕으로 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처럼 지드 역시 화자의 추억을 되돌리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는 내 추억들을 조금도 꾸밈없이 적어 보려고 한다. 설사 그 기억들이 곳곳에 조각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깁거나 잇기 위해 사실이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대는 그런 짓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추억들을 손질하려는 노력은 그것을 이야기하는 데에서 찾기 원했던 마지막 즐거움마저 깨뜨려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9쪽)” 제롬은 알리사나 알리사의 어머니를 각각 그녀들의 옷차림이나 분위기로 기억하는 편이 더 강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는 지금 그녀의 얼굴모습을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다. 얼굴 윤곽이며 눈망울머저도 생각해 낼 수가 없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무렵에 벌써 슬픔이 서린 듯 한 미소와 커다란 반원을 그리며 그처럼 유별나게 눈과 떨어져서 올라붙은 눈썹의 선뿐이다.(20쪽)”라고 적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작품의 주인공의 사랑은 감각을 통해서 얻은 대상에 대한 믿음으로 사랑을 일구어내지만, 그 믿음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구현되지 못하고 결국은 신기루와 같은 환상으로 남고 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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