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 개정판
무라카미 류 지음, 정윤아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골프코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치는 <368야드 파4 제2타; http://blog.yes24.com/document/7342072>를 읽으면서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붙드는 것이 참 힘들구나 싶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알랭 드 보통이 런던 히드루 공항에서 느낀 점을 적은 <공항에서 일주일을; http://blog.joins.com/yang412/13173813>과는 다른 무엇을 무라카미 류는 보고 들었을까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공항에서>는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읽는 내내 작가의 속셈이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아 답답했던 것 같습니다. 일곱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고서 작가 후기를 읽고나서도 머릿속이 맑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편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크게 두 그룹이라고 합니다. 겐토샤(幻冬舍)에서 나오는 유학정보지에 실린, ‘술집에서’, ‘공원에서’ 그리고 ‘편의점에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장소를 배경으로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술하는 기법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폐쇄성이 강한 일본 사회에서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얼마 남지 않은 희망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출발. (…) 현대사회에서 ‘출발’의 의미는 폐쇄적이고 좀처럼 충실감을 얻을 수 없는 일본 사회로부터의 도피에서 찾아야 한다.(206-7쪽)”고 적었습니다.

 

‘역 앞에서’, ‘노래방에서’, ‘공항에서’ 그리고 ‘피로연장에서’ 등, 역시 어디에나 있는 네 가지 장소를 무대로 한 한편은 올 요미모노(讀物)에 연재했던 것들로 무언가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합니다. “희망이란, 앞으로 다가올 미래가 지금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근대화가 진행되었던 과거에는 누구나 가난했지만, 희망만은 충만했는데, 모든 것이 다 있고, 무엇이든 넘쳐나는 지금 희망만큼은 없는 것 같다.(209쪽)”는 패러독스를 깨트려보고 싶었다는 것이지만, 역시 그 희망은 연기처럼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리뷰를 적으면서 이야기를 다시 훑어보니 저자의 의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편의점에서’의 예를 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음향스튜디오에서 효과음을 채집하는 일을 했다는 주인공의 특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작가는 편의점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마주치는 상황을 손에 잡힐 듯 그려냅니다. “가게 안은 또다시 빛으로 가득 차고, 나는 유리벽 너머로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본다. 빛 속에서 승객들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 소리를 들어보니 한 사람은 딱딱한 굽이 달린 샌들을, 또 한사람은 가죽을 댄 낮은 펌프스를 신은 것 같다. 버스의 앞 유리창이 반사시킨 가안 빛이 편의점의 물건과 그녀들의 옆모습을 비추고 있다.(30쪽)” 후기에 적은 것처럼 작가는 편의점이라는 제한된 좁은 공간으로 일본의 폐쇄성을 표현하면서도, 음향기술을 공부하러 샌디에고로 가려는 주인공의 결연한 의지를 담아 일본적일 삶을 살아온 아버지나 형과는 대비시키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저도 누군가처럼 “무의식중에 듣게 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폭력에 가깝다.(16쪽)”는 구절에 표시를 두었습니다만, 그보다는 “어린아이들은 표정만 보아도 기분이 어떤지 금방 알 수 있다. (…) 그러나 노인은 정반대다. 어떤 변화에도 쉽게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어쩌면 일본인의 특징이 아닐까요?) 아기보다 노인을 돌보는 게 훨씬 어렵다고 하는 까닭은 바고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은 치매에 걸리면 어린아이로 돌아간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내면일 뿐, 얼굴만 보고 그들의 심중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치매 노인을 돌보는 사람은 환자의 사소한 행동과 말투도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 된다.(19쪽)”는 구절에서 더 강한 느낌을 얻었습니다. 치매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입니다.

 

‘편의점에서’의 주인공은 미국 샌디에고로, ‘술집에서’의 여주인공은 프랑스 남부의 아를르로, 그리고 ;공원에서‘에 등장하는 후타엄마는 무작정 이 공원과 나라를 떠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들이 일본을 떠나려는 계획이 전체의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작다 싶습니다. 문제는 스무살짜리 여자애들과 함께 노래방에 들어선 50대 남성이나, 아홉 살이나 어린 남자를 집으로 끌어드린 피로연의 주인공, 생뚱맞게 초면의 남자들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한 여성, 우울증에 걸린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데이트하는 여성, 묘한 클럽에서 일하면서 가게 밖에서 고객을 만나는 여성 등의 이야기는 솔직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너무 일본적이라서일까요? 특히 공항에서 생긴 스토리가 생각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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