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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렉트라 ㅣ 지만지 고전선집 557
소포클레스 지음, 김종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글로벌 한류의 한축을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서 사극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극의 바탕이 되는 사료의 범위도 한계가 있어 같은 주제를 다시 극화할 때는 전작과는 다른 해석으로 역시 새로운 시각을 가진 시청자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제작방식이 때로는 역사를 왜곡한다는 지적도 나오곤 합니다만, 드라마는 작가와 연출가의 창의적인 해석에서 새롭게 이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 역시 시대에 따라, 작가에 따라 새로운 해석으로 독자 혹은 관객을 만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트로이의 영웅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에 관한 신화는 그리스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의 손으로 해석되어온 주제이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오레스테이아; http://blog.joins.com/yang412/13137059>를 읽었습니다. 김의기님이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http://blog.joins.com/yang412/13128005>에서 소개하는 사르트르의 <파리떼>에서는 아버지 아가멤논의 복수를 위하여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의 정부 아이기토스를 살해하려는 오레스테스가 아가멤논의 죽음 역시 신들의 뜻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듯, 복수를 허락하지 않는 제우스신의 신탁을 거부하고 복수를 감행하면서 “나는 나의 자유죠. 당신이 나를 창조한 순간, 나는 이미 소유가 아니게 되는거죠. 당신은 신이고 나는 자유로운 존재죠. 우리는 각자 혼자예요.”라고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표현하였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의 의지를 거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는 트로이에서 귀환한 아가멤논이 살해되고 그의 딸 엘렉트라가 남동생 오레스테이아를 국외로 빼돌리고, 외국에서 성장한 오레스테이아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복수를 한 다음에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저주에 따라 복수의 여신에 쫓기다가 아네타여신의 중재에 따라서 신과 인간이 화해하기에 이른다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엘렉트라를 중심으로 아가멤논의 죽음에 대한 복수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에서는 비중이 별로 크지 않은 엘렉트라를 소포클레스는 주연으로 기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킬로스의 남성중심의 해석에서 발전하여 여성인 엘렉트라를 복수극의 중심에 세우는 독특한 시도로 당시 그리스관객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엘렉트라>의 내용을 요약한 옮긴이의 해설을 보면, 서막에서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을 잊지 않고 있는 엘렉트라의 탄식으로 시작하여, 제1삽화에서는 엘렉트라와 여동생 크리소테미스 사이의 대화가, 제2삽화에서는 아가멤논의 살해에 대한 엘렉트라와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의 논쟁과 오레스테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엘렉트라는 절망하게 됩니다. 제3삽화에서는 오레스테스가 살아있는 것 같다는 크리소테미스의 전언과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엘렉트라의 대화로 구성되고, 제4삽화에서는 죽음을 가장했던 오레스테스가 정체를 밝히고 복수를 다짐하고 마지막 종막에서는 복수가 완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가멤논 가문의 비극에 신의 의지는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지금을 살고 있는 저의 시각으로는 등장인물들이 내세우는 복수의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 시대의 윤리적 판단으로는 복수가 가능하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에 등장하는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의 대화내용을 읽다보면, 그의 비극 <안티고네>에 등장하는 안티고네와 동생 이스메네의 모습과 겹쳐보입니다. 자신의 판단하는 정의에 따라 행동하는 강경파 안티고네와 엘렉트라, 그리고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생존을 위하여 현실과 타협하는 협상파 이스메네와 크리스테미스는 소포클레스가 즐겨 사용하는 대치되는 배역방식이었던 모양입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주요등장인물들이 모두 죽음을 맞는 <안티고네>와는 달리 <엘렉트라>에서는 복수를 완성하고 몰락한 가문을 다시 세운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는 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