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1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행기를 타보기 전에는 ‘공항’하면 ‘이별’이란 단어가 떠올랐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문주란씨가 불러서 히트를 쳤던 ‘공항의 이별’의 영향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학회참석차 혹은 공무로 비행기를 타는 일이 많아지면서부터 ‘공항’은 ‘출발’ 혹은 ‘여행’이라는 단어가 우선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순수하게 관광을 목적으로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는 탓에 설레임보다는 은근한 압박감을 안고 떠나는 여행이다 보니 공항에서도 들고가는 일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아 공항을 찬찬히 살펴보는 시간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을 마치고 귀국길에 만나는 외국의 공항 역시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구경하는 일보다는 들고갔던 일을 마무리하고 난 다음에 쏟아지는 피로감에 어서 비행기를 타고 싶다는 생각, 혹은 비행기가 제 시간에 떠날까하는 걱정에 더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여행의 기술; http://blog.joins.com/yang412/13104741>에서 공항에 대한 작가의 소회의 단편을 읽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공항에서 일주일을>은 지금까지 제가 공항에서 보낸 천편일률적인 시간을 알랭 드 보통은 어떻게 보냈을까 하는 궁금증 때문에 읽게 되었습니다. ‘1. 접근, 2. 출발, 3. 게이트 넘어, 4. 도착’으로 글을 구분하여 쓴 것으로 보아 공항을 통하여 어디론가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이 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들어본 기억이 없는 최초의 ‘공항상주작가’라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된 보통의 입장에서 보면 공항에서 상주하면서 맡은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하기까지의 과정을 나눈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기대했던 것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 자신은 데번셔 백작들의 재정지원을 받아 책을 쓰고 그들에게 화려한 헌사까지 바쳤다는 토마스 홉스의 사례를 인용하면서, 자신은 히드로 공항에 임시직이었지만 상주작가로 고용되면서 아무런 요구를 받지 않았음을 강조하여 자신의 도덕성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만, 사실은 누구나 보통의 맛깔나는 글솜씨와 그의 명성을 염두에 두고 색다른 방향에서의 공항 홍보전략의 하나로 그를 초청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일 것 같습니다. 특히 일반 여행객은 당연하고 공항에 상주하는 직원들도 출입할 수 없는 제한구역까지도 돌아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공항로비에 책상을 두고 집필하는 모습을 일반인들이 볼 수 있도록까지 한 것을 보면 그가 어떠한 말로 설명하더라도 저의 생각을 바꾸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몇 해 전에 영국의 전염병관리정책을 살펴보기 위한 짧은 출장길에 히드로공항을 구경할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작가처럼 히드로의 속살까지 살펴볼 수는 없었습니다. 공항에서는 소피텔이라고 하는 공항호텔을 보통에게 숙소로 제공하여 24시간 공항을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하는데, 사실 저도 공항구역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 정도 묵어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특히 비행기를 놓치고 연결편을 타기 위하여 하루밤을 머물러야 하는 경우에 말입니다.

 

보통은 호텔시설에서부터 근무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공항에서도 시설에서부터 근무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 관찰한 듯 적어내려가고 있습니다만, 그들의 삶 혹은 애환을 제대로 적었는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스티븐 스필버그감독의 2004년 작 영화 <터미널>에서 동유럽에서 날아온 톰 행크스가 좌충우돌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공항의 진면목이 아닐까합니다.

 

유명한 다큐멘타리 사진작가 리처드 베이커가 마치 보통과 함께 움직인 듯 찍은 히드로공항의 속살 같은 사진들은 분명 볼거리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공항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도 글에 녹여냈다고 합니다만, 보통의 눈으로 본 것들을 그의 생각으로 풀어낸 것이란 느낌입니다. 가끔은 만나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그래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비행이라는 의식은 겉으로는 세속적으로 보이지만, 이 비종교적인 시대에도 여전히 실존이라는 중요한 주제 그리고 세계의 종교 이야기에 그 주제들이 굴절되어 나타난 모습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11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