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
김경집 지음 / 시공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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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가 많이 다양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전공분야를 넘어서면 얄팍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저의 편협한 책읽기는 종교분야에는 아예 눈길조차 두지 않고 있는 것은 아는 것도 별로 없으면서 공연히 생각지도 않은 논쟁에라도 휩쓸릴까 미리 몸조심하는 점도 있지 싶습니다.

 

그래도 눈앞에 책이 있으면 읽지 않고는 베기지 못하는 버릇 때문에 김경집교수님의 <눈먼 종교를 위한 인문학>을 읽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는 영문학을 그리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는 김교수님은 가톨릭대학교 인간학교육원에서 인간학과 영성 과정을 맡게 되면서 종교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그런 경향은 바로 우리나라의 종교계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김교수님은 신구교를 막론하고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세 가지로 압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근본주의와 교조주의에 지나친 집착을 보인다는 점, 두 번째는 지나치게 성직자 중심적이라는 점, 그리고 세 번째는 여전히 서구중심적으로 사고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복잡한 신학을 떠나서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아주 간결하게 서술한 복음서조차 교조적으로 해석하는데서 문제가 시작되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복음서에 충실하여 선입견이나 고정관념도 배제하고 순수하게 읽어가다 보면 눈이 밝아지고 생각이 자유로워지며 실천의지가 또렷해졌을 뿐 아니라 다른 이에 대한 편협함과 배타성도 사라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부의 제목을 ‘새로 읽는 성경’으로 정하고 첫 번째 글을 ‘예수의 탄생을 외면했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것 같습니다. 요즈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표시가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를 배려하는 사회적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만을 앞둔 만삭의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몸을 풀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를 복음서에서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많지 않은 복음서 내용으로 전후사정을 밝히는 것이 쉽지 많은 않았던 듯 아무래도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늦게 여관에 도착한 마리아를 위하여 자신이 차지한 방을 내어줄 의인이 없었던 것처럼 현재를 사는 우리들도 그날 여관에 들었던 사람들처럼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는 청맹과니가 아니냐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심 불편했던 것을 보면 저 또한 그날 여관에 들었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구나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는 ‘죽고 나서, 땅이 아닌 하늘에서, 소멸하지 않고 영원히 사는 것’으로 이해하기 쉬운 하느님나라, 즉 ‘하늘에 있는 낙원’은 일종의 죽음이라는 근원적 공포에 대한 보상적 대안으로 이해되는데, 보상을 바라는 기복적 신앙관은 자칫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느님나라는 공간적 개념이 아닌 실천적 개념으로 ‘앞으로 항상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예수의 삶을 따름으로써 하느님의 통치가 구현되는 의로운 나라’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라는 주문인 것입니다.

 

‘포도밭 일꾼과 품삯이야기의 숨은 뜻’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저자의 순수하고 명쾌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포도밭에 데려온 일꾼이나, 정오에 데려온 일꾼이나, 해질 무렵에 데려온 일꾼이나 차이를 두지 않고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내어준 포도밭 주인의 처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최소한의 방편은 마련해주어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설명만으로는 부족하였던지 “노동조합이라는 게 본디 노동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보다 더 열악한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것 보면 안타깝다. 자신들이 올라온 사다리로 다른 이들이 올라올까 봐 그 사다리를 발로 걷어차는 야박한 우리들의 자화상이다.(161쪽)”라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부활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해석도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모든 인간의 본원적 공포인 죽음을 이겨내고 더 나아가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놀라운 사건이 되는 부활을 육신의 측면에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부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할 것인데, 이는 내 몸이 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 부끄럽고 탐욕적이며 사악한 나, 실천하지 못하고 공염불만 되뇌는 내가 죽어야, 참된 부활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고 그 믿음으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하는 영적 세계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지혜와 사랑의 에너지를 이끌어낸다.”고 전제하고 종교의 유무와 종파의 차이를 떠나서 이를 깨달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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