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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논리 ㅣ 들뢰즈의 창 6
질 들뢰즈 지음, 하태환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최근에 읽은 <괴물이 된 그림; http://blog.yes24.com/document/7277164>을 쓴 이연식님은 집필동기를 ‘괴물과 견주어 보았을 때 비로소 인간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나게 하는 것’에 두고 미술작품에 등장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분석하였습니다. 저자가 괴물이라고 지칭한 것들은 ‘저자는 괴물을 기괴한 형상, 뒤틀린 형상, 타락한 형상, 합쳐진 형상, 한없이 작은 형상, 한없이 커다란 형상, 인간을 닮은 형상, 손끝에서 나오는 형상 등이 있는데, 모두 95의 작품을 인용하여 나름대로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에 프랜시스 베이컨의 <십자가 아래 인물들을 위한 세 습작> 가운데 오른편 작품을 인용하고 있어 내심 반가웠던 것은 베이컨의 그림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담은 <감각의 논리>를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용한 베이컨의 작품에 대하여 이연식작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0세기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에도 목이 길쭉한 괴물이 등장한다. 눈과 코가 있어야 할 자리를 날카로운 이빨이 들어찬 입이 몽땅 차지하고 있다. 얼굴 양편에는 큼지막한 귀가 있어서 이 형상이 인간과 관련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이연식 지음, 괴물이 된 그림, 15쪽)” 저자는 <감각의 논리>를 인용하지 않고, 베이컨이 그린 인물에 대하여 ‘내면에서 나온 무언가에 먹히는 얼굴’이라는 영화감독 베르톨루치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에 등장하는 추한 인물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외양은 구상에만 해당될 따름이다. 벌써 형상은 죽지 않고 아직 살아남아 있는 구상의 관점에서만 괴물처럼 보인다. 우리가 이것을 ‘형상적으로’ 보자마자 괴물적이 되기를 멈춘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형상들은 그들이 채우고 있는 일상적인 업무에 따라, 그리고 그들이 직면한 순간적인 힘의 기능에 따라 가장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173쪽)” 들뢰즈는 누구나 기괴하다고 볼 수 있는 베이컨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을 괴물이 아닌 무언가의 의미를 발견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에 읽은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53217>의 리뷰를 정리하면서 확인한 것입니다만 들뢰즈에게서는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흄, 칸트, 니체 등을 재해석하는 철학사가로서의 모습 뿐 아니라 감각, 사건, 정신분열, 영화, 철학 등과 같은 다방면의 개념들에 대하여 철학적 해석을 하는 생성의 철학자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처음 책을 열었을 때는, 영국경험론의 비조로 인식되고 있고, 데카르트와 함께 근세 철학를 개척한 것으로 알려진 16세기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철학에 대하여 재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읽어가면서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품들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책읽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배다른 형 니콜라스 베이컨의 후손으로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아일랜드 태생의 화가로, 대담성과 소박함, 강렬함과 원초적인 감정을 담은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추상적인 형상이 특징 없는 단색의 배경 위에 유리나 기하학적인 철창에 갇혀 있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들뢰즈는 베이컨을 ‘반 고흐와 고갱 이래 가장 훌륭한 색채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베이컨은 이집트의 예술적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본 들뢰즈는 구조 혹은 골격, 형상 그리고 윤곽이라고 하는 세가지 요소들이 색채 속에서 효과적으로 수렴되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화가 베이컨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1944년 삼단제단화, 십작책형을 기초로 한 형상의 세 가지 습작을 통해서 돌파구를 찾으면서라고 합니다. <감각의 논리>에서도 베이컨의 삼단화 작품들을 도판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들뢰즈는 “(베이컨의) 그림들에서는 구조에서 형상으로, 그리고 형상에서 구조로 향하는 이중의 움직임이 있었다. 고립과 변화 그리고 흩뜨림의 힘들. 그러나 두 번째로는 형상들 자체 내에 움직임이 있다. 자기들의 층리에서 고립과 변형 그리고 흩뜨림 현상을 또 취하는 짝짓기의 힘, 마지막으로 세 번째 유형의 움직임과 힘이 있다. 바로 거기서 삼면화가 개입한다.(98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들뢰즈의 베이컨의 회화작품 해석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베이컨의 작품에서 표현되어 있는 기괴한 형상을 한 사람의 모습에서 괴물이 아닌 무엇을 찾아가는 방법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지 다시 읽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