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스테이아 열린책들 세계문학 197
아이스킬로스 지음, 두행숙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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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의 주인공들은 신들의 손에 놀아나는 것 아닌가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신탁을 통해서 신의 뜻을 미리 알고 피하려는 것이 오히려 신의 뜻대로 흘러가는 결말을 맞는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그래서 혹시 신의 뜻을 거스른 사람이 있었는지 궁금해 하던 참에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http://blog.joinsmsn.com/yang412/13128005>에서 작은 힌트를 발견했습니다. ‘자유로운 인간은 정말 행복한가?’라는 제목으로 된 장 폴 사르트르의 <파리떼>에 대한 리뷰입니다. 아르고스의 오레스테스 가문의 비극을 다룬 신화를 재해석한 것입니다.

 

트로이전쟁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전쟁이 끝나고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남편이 전쟁터로 떠난 다음 아이기토스와 정분이 났던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아가멤논을 정부와 함께 남편을 살해합니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와 딸 엘렉트라는 어머니와 정부를 살해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다짐하지만, 신의 계시를 밝혀달라는 오레스테스의 요청에 제우스신의 계시는 “젊은이, 신들을 심판해서는 안 돼, 신들은 그들만의 비밀과 슬픔을 가지고 있다네.”였습니다. 하지만 오레스테스는 번개와 함께 내려진 제우스신의 계시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번개가 큰 돌을 쳤어.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이야? 이 번개는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나는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아. 사람의 명령도, 신의 명령도 듣지 않아.(김의기 지음, 어느 독서광의 유쾌한 책읽기 301쪽)”라고 신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서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토스를 살해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오레스테스가 제우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 배경을  사르트르는 이렇게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자유죠. 당신이 나를 창조한 순간, 나는 이미 소유가 아니게 되는거죠. 당신은 신이고 나는 자유로운 존재죠. 우리는 각자 혼자예요.” 오레스테스의 이런 생각에 대하여 제우스 역시 “일단 자유가 인간의 마음에 횃불을 당기면, 신은 그 앞에서 무력해지는거야. 이제 모든 문제는 인간과 신의 문제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문제가 되고 말아”라면서 신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고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르트르의 이런 해석에 관심이 끌려서 읽게 된 것이 아이스킬로스의 <오르테이아>입니다. 호메로스가 전하는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한 오르테우스 가문에 얽힌 가족구성원들 간의 상쟁을 다룬 비극 3부작입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귀국하는 시점에서부터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토스에 의하여 살해당하는 시점까지를 다루는 제1부 아가멤논에서는 이들의 살해동기가 드러나게 됩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로 떠나기 전에 역풍을 만나고 역질로 군대가 어려운 상황을 맞았을 때, 제우스신이 거느리는 독수리들이 새끼 밴 토끼를 잡아먹은데 대하여 아르테미스 여신이 분노한 때문이며, 아가멤논의 딸을 제물로 바쳐야 분노가 풀릴 것이라는 신탁을 받게 됩니다. 결국 아가멤논은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고서야 출항하게 된 것이고,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남편의 이런 처사에 분노하여 복수를 꿈꾸었던 것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살아남은 딸 엘렉트라를 방치하고 또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가멤논의 복수를 할까 두려워 국외로 추방했다고 하는 이야기의 진행을 보면 그녀의 주장은 그저 부정한 자신을 감추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히려 아가멤논의 아버지 오르테우스와 그 동생 플레이스테네스 사이에 얽힌 피의 저주를 이어받은 플레이스테네스의 아들 아이기토스가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유혹하여 아가멤논을 살해함으로써 오르테우스에 대한 아버지의 복수를 대행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에서는 아르고스로 돌아온 오르테이아가 엘렉트라를 만나고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토스를 살해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에서는 사르트르가 재해석한 것처럼 오르테이아의 복수극을 제우스가 거부한 것이 아니라 아폴론의 적극적인 신탁이 있었고, 제우스 역시 우회적으로 찬성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르테이아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저주에 따라 복수의 여신들의 추적을 받게 되는 3부 자비로운 여신들에서는 오르테이아의 죄를 추궁하는 저주의 여신들과 무죄를 주장하는 오르테이아가 아테나여신의 판결을 구하는 장면입니다. 오르테이아에게 복수를 신탁했던 아폴론도 등장하여 변호하고 배심원단의 동수 판결에 대하여 아테나여신이 오르테이아를 지지하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는데, 이에 반발하여 아테네를 저주하는 복수의 여신들을 달래서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그리스 신화는 시대가 흐르면서 얼마든지 해석을 달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앞으로 관심을 두고 공부를 더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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