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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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집 <라쇼몽>을 읽게 된 이유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어떤 책에서 ㆍ<라쇼몽>에 담긴 ‘덤불 속’을 인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덤불속에서 칼에 찔려 죽은 채 발견된 남자의 주검과 관련된 사람들 - 죽은 남자를 처음 발견한 나무꾼, 죽은 남자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탁발승, 살해 용의자를 체포한 수색꾼, 죽은 남자의 장모, 죽은 남자를 살해한 용의자, 죽은 남자의 아내 그리고 무녀의 입을 빌린 죽은 남자 등 7명 - 의 진술 가운데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건의 목격자들의 경우 기억의 불확실성을 그리고 죽음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범인과 죽은 남자 그리고 아내의 경우는 처한 상황에 따라서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정황인데, 이 부분에 대하여 작품해설에서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거짓과 과장이 없다 하더라도, 정물 하나도 보는 이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보는 이의 시력과 관념 때문에 달리 보인다. 그러니 정물이 아닌, 스토리가 사람들과 얽힌 사건에 대한 통일된 증언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사건은 ‘덤불’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269쪽)” 이 단편의 제목이 ‘덤불’인 것도 작가의 심려를 볼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열입곱 편의 단편들 가운데 주체 못할 정도로 긴 코를 가진 스님의 마음고생을 코믹하게 묘사한 <코>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어둡고 기묘한 분위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특히 작가가 죽던 해 발표된 <세 개의 창>에서는 세 사람의 군인이 맞는 죽음을 그리고 있어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 것은 아닌가하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여기 수록된 열입곱편의 단편을 통하여 다양한 군상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라쇼몽>이라는 이름의 단편이 가장 앞에 온 것은 여기 수록된 단편들에 담긴 에피소드가 동명의 영화에 담겼기 때문인 모양입니다. 지진과 화재 등 온갖 재해로 황폐해져 사람들 발길이 끊긴 라쇼몽은 연고없는 시체가 버려지는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인데, 비를 말린 뱀고기를 건어라고 팔다가 전염병으로 죽은 여인의 머리털을 뽑아 가발을 만들어 팔려는 노파와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나는 하인의 모습에서 더 이상 무너져 내릴데가 없어 보이는 인간상을 보여주고, 흔들리는 관솔불이 미치지 못하는 누각 밖은 ‘오로지 깊은 동굴처럼 새카만 밤이 보일 뿐’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세상살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난감할 따름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흔히 예술하는 사람의 생각을 일반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도 합니다만, <지옥변>에 등장하는 당대 제일의 화공 요시히데야 말로 그런 예술인의 전형이라고 하겠는데, 정말 현실에서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지옥변상도를 그리라는 호리카와 대신의 영을 받아 그림을 그려나가던 요시히데는 그림을 완성하기 위하여 꼭 필요한 장면을 보아야 하겠다고 청을 넣게 됩니다. “대체로 본 것이 아니면 그릴 수가 없고, 잘 그려도 마음에 들지 않아 그리지 못한 것과 같다.(78쪽)”고 하는데 완성단계에 이른 작품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레에 탄 귀족부인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화룡첨정으로 하고자 하니 수레에 귀족부인복장을 한 여인을 태워 불태워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대신은 그 수레에 요시히데의 딸을 태웠고, 불타는 수레에 탄 여인이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고난 화가는 불을 끄러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붓을 들어 그림을 완성하더라는 범인(凡人)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에서 유난히 귀기(鬼氣)가 느껴져 공연히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요시히데의 그림에 대한 집요한 욕망을 다룬 <지옥변>도 그렇고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린 아내의 고통을 거두어주려 살해한 남편의 이야기를 다룬 <의혹>도 그렇고, 마음에 구김이 가는 이야기는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것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일까요?

 

인간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고 그런 삶에 대한 가치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특징이라고 보았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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