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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 지음, 김명남 옮김 / 까치 / 2013년 1월
평점 :
샘 해리스박사는 <자유의지는 없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3064786>에서 “뇌파검사(EEG)와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장치(fMRI)를 통해 확인한 결과, 스스로 내린 결정을 인식하기도 전에 뇌의 운동피질이 활동하고 있더라”는 데이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려고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우리의 뇌에 있는 신경세포는 이미 우리가 할 행동을 지시하는 신호를 내보내는 것이라고 해석된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의식적으로 행동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어온 것이 사실은 잘 못 알고 있는 것이며, 무의식의 영역에 속하는 뇌의 활동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 샘 해리스박사가 우리가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데이터에 의하여 바뀔 수도 있는 판단을 성급하게 내리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조심스럽게 달아두기도 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교수의 <새로운 무의식>은 역시 같은 데이터를 인용하여 무의식의 영역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fMRI라는 기술의 발전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내리는 판단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실들, 특히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의 이유를 분명하게 알고 있다는 생각들이 얼마나 오류투성이이며, 의식 아래에서 작용하는 무의식의 영향을 크게 받는지를 과학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물로디노프교수가 뇌의 이러한 기능을 ‘새로운 무의식’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라는 부제가 의미하는 것처럼 프로이트에 의하여 제창되었던 과거의 ’무의식‘과 차별화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행동은 의식과 무의식 양쪽에서 지각, 감정, 사고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와서 빚어진 산물이다.(26쪽)”라고 한다면 무의식의 영역에 속하는 행동을 어떻게 구별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환자의 행동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정신적 과정에 의하여 지배될 때가 많다는 올바른 결론을 내렸지만, 당시의 과학 수준으로는 이를 측정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환자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드러나는 정황들 가운데 환자의 병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것들을 추출해내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요법에서 추천하는 자성적 기법(self-reflection)을 통해서 뇌의 무의식적 과정이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제한점이 드러나면서 정신분석학은 점차 관심을 잃어가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감각 더하기 마음이 곧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를 뇌에서 처리하는 과정에서 마음이라고 하는 무의식이 작용하여 정보들 사이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보다 완벽한 모형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뇌의 데이터처리체계가 두 층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의식은 기억의 형성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건에 대한 기억을 꾸며내기 위하여 다양한 기교를 부린다는 것입니다. 즉, 풍부한 상상력으로 생각해낸 속임수들로 기초적인 기억을 보완하는 과정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고 그 영향이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78043>에는 ‘기억의 천재 푸네스’라는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주인공 푸네스는 열아홉살이 되던 해 말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의식을 잃었는데, 의식을 회복하고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사소한 기억까지도 명확하게 되살리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에 관한한 놀라울 능력을 가진 푸네스지만, 그의 놀라운 능력은 그저 단순한 정보수집체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믈로디노프교수는 1920년대 러시아 심리학자 AR 루리아의 연구대상이었던 솔로몬 셰레솁스키가 바로 푸네스와 꼭 같은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보르헤스도 이 연구에 대하여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무의식>의 제2부 ‘사회적 무의식’에서 저자는 다양한 실험들을 인용하여 사람의 마음 읽기,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기 등과 같이 무의식에 의하여 결정되는 사람들의 사회적 패턴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무의식은 인간의 생존을 돕는 방향으로 진화되어 온 것이 틀림없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마음, 즉 무의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