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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3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3권에 담기는 6부, 7부, 8부는 등장인물 사이에 고조되어온 갈등이 반전을 거치면서 파국으로 치닫거나 혹은 수습되어 성숙한 관계로 발전하는 과정으로 나아갑니다. 작가가 <안나 카레니나>를 통하여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극명하게 하기 위하여 안나와 브론스키 그리고 키티와 레빈 두 커플의 관계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안나와 브론스키 커플은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하여 화르르 타오르는 바짝 마른 나뭇가지처럼 파경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키티와 레빈은 시작이 어긋나면서 삐걱거리다가 극적으로 결혼에 성공하지만 레빈이 아내 주변에 등장하는 남성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갈등을 일으키지만 키티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레빈의 형 니콜라이의 죽음을 겪으면서 레빈의 사유의 폭이 넓어지면서 원만한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3권은 레빈과 결혼한 키티가 레빈의 영지인 포크로프스코로 가서 살게 됩니다. 키티와 레빈이 살고 있는 곳에 다양한 인물들이 방문하면서 키티와 레빈의 관계가 시험에 들게 됩니다. 3권의 시작은 키티의 언니 돌리와 그녀의 아이들 그리고 키티의 부모, 그리고 키티가 브론스키로 부터 버림을 받아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친교를 맺은 바렌카와 레빈의 형 세르게이까지 찾아와 많은 등장인물들이 북적이게 되면서 서로 엮이고 부딪히는 사이에 다양한 스토리가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돌리의 남편 스티바와 같이 온 바센카 베슬로프스키가 키티에게 베푸는 호의와 이에 대한 키티의 대접에 레빈의 오해를 불러 일으켜 결국 레빈은 바센카에게 퇴거를 요구하게 되는 사교계에서 보면 극히 이례적인 상황까지도 일으키게 됩니다. 만삭인 아내에게 호의를 베푸는 방문객에게 질투하는 주인을 보면서 지나친 설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만,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한 두 사람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이해가 될 듯하기도 합니다.
한편 2권에서 카레닌과 헤어지고 브론스키와 함께 외국으로 떠돌다가 잠시 이탈리아에 머물던 안나는 브론스키의 영지인 보즈드비젠스코예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곳은 레빈의 영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곳입니다. 브론스키는 이곳에서 병원을 건축하는 등 활동을 통하여 사람들과의 관계를 확대해나갑니다. 한편 브론스키의 이런 활동은 안나에게 조금씩 불안감이 싹트게 되는데, 브론스키를 독점하려는 안나의 성격과, 법적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카레닌이 이혼을 해주지 않으면서 아들 세료자와의 만남을 금하고 있는 것도 안나의 정서를 황폐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귀족회의 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브론스키와 안나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여기에는 카레닌과의 관계가 유연하게 마무리되지 못한 것이 원인이 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브론스키를 독점하려는 안나의 욕심이 때로는 브론스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문제인 듯 합니다. 그리고 카레닌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 세료자를 볼 수 없다는 안나의 조바심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결국은 7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브론스키를 만나러 기차를 탔던 안나가 열차에 몸을 던져 죽음을 맞는 것으로 비극적인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마치 안나와 브론스키가 처음 만나던 기차역에서 누군가 열차에 치여 죽음을 맞았던 것에서 이러한 비극적 결말이 예측되었던 처럼 말입니다.
작가는 안나가 죽음을 결심하기에 앞서 자살을 시사하는 장면을 두고 있습니다. “그녀는 출산 후 병을 앓던 무렵과 그 때 그녀를 떠니지 않던 감정을 기억해 냈다. ‘왜 나는 죽지 않았을까?’ 그때의 말과 그때의 감정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 순간 문득 그녀는 그녀의 영혼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렸다. 그래, 그것은 오직 한 가지만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 ‘그래, 죽는거야…!’(408쪽)” 하지만 막상 기차바퀴에 몸을 던지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한 짓에 몸서리를 치면서 ‘내가 어디에 있는거지? 내가 뭘 하고 있는거야? 무엇 때문에?’하고 생각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기차에 끌려가면서 그녀는 ‘하느님,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라고 독백을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레빈 역시 여러 차례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생사문제를 고민하게 된 레빈은 “죽음보다 오히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그것이 무언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생명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497쪽)”고 작가는 적고 있습니다. 그런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종속을 끊어야 하며 그 방법은 바로 죽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키티의 출산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기도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내고 그리스도교가 준 영적 행복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리스도교에 국한하지 않는 불교, 혹은 마호메트교로도 확대하여 이해하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특히 8부에 들어 전개된 투르크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 일종의 종교전쟁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안나 카레니나의 대단원은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리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560쪽)”라는 레빈의 독백으로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저는 작가가 신의 존재와 신의 섭리에 의한 최고의 선을 독자들에게 전하려고 한 것이라고 정리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