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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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는 모두 8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권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었고, 2권은 3부에서 5부까지 그리고 3권은 6부에서 8부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각부의 분량이 서로 다른 어려움 때문에 3권으로 묶은 것 같습니다만, 8부 까지 이어지는 스토리 라인을 각각 두 개씩 묶어서 기-승-전-결의 구조의 4권으로 묶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권에 묶은 1부와 2부는 주요등장인물들을 서술하여 이들의 관계가 독자의 머릿속에 정리되도록 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면, 2권에 들어있는 3부, 4부는 1부에서 풀어놓은 관계들이 서로 얽히면서 갈등이 고조되는 단계, 2권의 5부와 3권의 6부는 갈등이 반전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작품해설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이 작품은 안나를 중심으로 하여 그녀의 남편 카레닌 그리고 그녀의 애인 브론스키가 서로 엮여 만들어내는 격정적인 사랑과 배신의 불협화음이 한 축이라고 한다면 다른 한축은 한때 브론스키라는 콩깍지에 쓰인 키티와 키티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레빈이 다른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결국은 브론스키가 유부녀 안나와의 위험한 사랑을 선택하면서 상처를 입게 된 키티가 레빈의 순수한 사랑을 재발견하면서 결혼에 이르게 되면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서로의 장점을 발견하면서 원만한 결혼생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게 만듭니다. 특히 레빈과 함께 이복형 니콜라이의 죽음을 간병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헌신적인 모습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시각에 따라서 카레닌-안나-브론스키의 이야기와 레빈-키티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전개되는 구조라고 이해되기도 하는데, 특히 2권에서는 그런 경향이 뚜렷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마장에서 브론스키가 낙마하는 사고를 당하면서 안나와 브론스키의 위태로운 사랑이 그녀의 남편 카레닌의 눈에 포착이 되고 사고로 인하여 황망한 정신에 안나는 브론스키와 사랑하는 관계이며 그의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1권이 마무리되었습니다. 2권은 키티에게 퇴짜를 맞은 레빈이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일에 파묻혀 실연의 상처를 다스리는 과정이 지루하게(?) 이어집니다. 작가는 농노제도의 폐지에 따른 당시 러시아 농촌사회의 혼란상을 그리고 있는데, 새로운 농사기술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시골농부들 때문에 답답해하는 레닌의 모습에서 순수함을 느끼게 됩니다.

 

작가는 “(레빈) 자신이 민중과 함께 살고 있고 그의 모든 이해관계가 민중과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를 민중의 일부라고 생각하여 자신과 민중 안에서 어떤 특별한 성질이나 단점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을 민중과 대립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2권 13쪽)”라고 레빈의 성품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보면 러시아 민중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안나의 고백을 듣게 된 카레닌은 공직자로서의 자신의 위치를 고려하여 안나-브론스키의 스캔들을 덮어두려 하지만 두 사람의 애정행각이 노골화되면서 결국은 이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불륜으로 인하여 이혼을 당하게 되는 경우 원인제공자는 재혼을 할 수 없도록 법에 정해져 있어 카레닌이 이혼을 제기하면 안나의 처지는 몰락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혼을 결심한 카레닌이 모스크바에 도착하였을 때 공교롭게도 스티바를 만나게 되고, 레빈 역시 모스크바에 와 있는 상황입니다. 스티바의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그의 특장을 활용하여 이들을 카레닌과 레빈 그리고 키티까지 모조리 집으로 초대하여 이들 사이에 스며들어 있던 갈등구조를 걷어내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레빈과 키티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카레닌 역시 이혼하려는 마음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 안나를 용서하게 되는데, 작가는 안나의 치명적인 사랑을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결국은 법적으로 이혼은 아니지만 안나와 브론스키는 러시아를 떠나 외국을 떠돌다가 다시 페테르부르그로 돌아오지만 이곳 사교계는 특히 안나에게 적대적으로 변해있습니다. 사교계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마르셀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하여 프랑스 사교계의 모습을 시시콜콜하게 그리고 있는 것과는 달리 톨스토이는 러시아 사교계의 모습은 대충 뭉뚱그리고 있어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2권에서 재미있는 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카레닌이 모스크바에서 처남 스티바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원전에는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스티바는 카레닌에게 ‘하게’조로 말하는 반면 카레닌은 스티바에게 공대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안돼, 이미 약속했잖아. 그래서 우리 모두 자네가 올 거라고 기대하고 있단 말이야.(스티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우리 사이의 친척 관계가 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당신 집에 갈 수 없다는 겁니다.(카레닌)”(302쪽) 안나가 스티바의 여동생이지만 1권에서 스티바의 아내 돌리를 달래는 장면에서 안나와 돌리가 서로 공대를 하는 것을 보면 연배가 비슷한 것으로 추측하게 됩니다. 그런데 카레닌은 안나와 나이 차이가 20살이 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아내보다 나이가 많은 손위 처남에게 나이 많은 제낭이 공대를 하는 것이 러시아식이었을까요?

 

안나와 카레닌 그리고 레빈과 키티의 두 커플은 브론스키의 관심의 향배에 따라서 희비가 엇갈리는 기묘한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톨스토이 시대에 유럽은 사랑과 배신 불륜이 유행병처럼 퍼지고 있었던 모양인데 작가가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마지막 3권을 읽어보아야 손에 잡힐까요? 아직도 오리무중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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