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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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소위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은 걷는 사람들에게는 꿈의 길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무릎부상으로 꽤나 오래 쉬고 있습니다만, 주말마다 서울근교에 있는 걷기에 좋다는 코스를 따라 걷기에 나서면서 언젠가부터 저 역시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말걷기를 같이 하는 아내와 함께 하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정진홍교수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는 얼마 전에 참가한 예스24의 파워문화블로그 네트워크데이에서 온라인 네트워크의 독특한 경험을 소개하고 상품으로 받은 것인데, 산티아고로 가는 길을 한 걸음 떼어놓은 것 같아 마음이 흡족해졌습니다. ‘안주는 안락사다!’라고 늘 자신을 타이른다는 정진홍교수는 ‘그저 저질러보고 그저 남이 안하는 이상한 짓거리로 튀는 것’이 아니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안주하다보면 삶은 산소가 아닌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 언젠가 질식사하게 되기 때문에 도전에서 나오는 산소로 자기 호흡을 할 수 있게 끊임없이 도전을 해야 했고, 산티아고도 그래서 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행은 현지에 가서 보는 것보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 더 즐겁고 흥분되는 것 같습니다. 현지에 관한 정보를 모으고 일정을 짜면서 머릿속에서 미리 코스를 따라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미리 준비하는 것인데, 그렇게 세심하게 준비를 한다고 해도 현지에서 일어나는 돌발상황 때문에 매번 일정을 조정하여 상황을 편하게 열어가는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기행문에는 이런 경험들을 담아서 같은 길을 따라 가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교수님은 산티아고로 가려는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친절을 베풀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그의 인문학적 감성이 풍부한 글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읽을거리를 만들어냈다고 하겠습니다. 정진홍교수님의 인문학적 감성이 넘치는 글은 이미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시리즈를 통해서 흠뻑 빠져들었던 터라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에서는 독백하듯 풀어놓는 산티아고가는 길에 대한 그의 느낌을 오롯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산티아고 가는 길은 ‘내 안의 까닭 모를 눈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남자의 눈물이 그리 흔한 것이 아닌데, 그것도 까닭모를 눈물이 쏟아지는 경험을 산티아고에서 했다면 그곳에는 아주 특별한 무엇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생장의 순례자사무소를 나서 눈보라속에서 피레네 산을 오르면서 저자는 “나도 모르게 북받치듯 눈물이 났다. 단지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내 속에 응어리져 있던 그 무언가가 분출하듯 쏟아진 것이었다. 오장육부의 속을 비집고 올라오듯 오래 묵은 내 속의 숙변 같은 눈물들이 솟구쳐 올랐다. 정말이지 눈물을 흘린 것이 아니라 토해냈다.(36쪽)” 뿐만 아니라 저자가 삼류하를 건너 요양의 백탑이 멀리보이는 탁 트인 요동벌판에 서서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라는 ‘호곡장론’을 남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인용하고 있어 다시 놀랐습니다. 남자의 눈물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우리 사회, 특히 조선사회에서 당당히 눈물을 논하다니 당장 열하일기를 읽어 연암의 호곡장론을 새겨보아야 할 것만 같습니다.

 

정교수님은 산티아고에서 보고 느낀 것을 단순하게 기록하기보다는 인문학적 재료와 섞어서 느낌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은 교수님의 생각과는 다른 기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보아디어 델 카미노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들어갔더니 오히려 비가 개이고 머물을 뻔 했던 장소가 빗속으로 파묻히더라는 이야기에서는 대학신입생 때 홍도에 갔다가 태풍 빌리를 만났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청명한 날씨였는데 태풍이 들이 닥친다하여 배를 얻어 타고 홍도를 탈출했지만 겨우 흑산도에 이르렀을 뿐 흑산도성당의 작은 방을 얻어 태풍이 지나갈 때까지 꼼짝도 못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때 홍도에 남았던 사람들은 홍도에서 맞은 태풍의 경험이 특별하더라는 자랑이 많이 부러웠던 기억도 말입니다.

 

생장에서 피니스테레까지 900km의 거리를 걷는 다는 것은 걷는 순간 스스로의 깊이를 토해내고 자신만의 둘레를 드러내는 길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에 제 마음도 벌써 산티아고 가는 길로 떠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가보겠다는 결심에서 이제는 한 걸음 정도 가까이 다가선 것 같은 느낌이 남는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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