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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소설 전집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0
이상 지음, 권영민 엮음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300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이상 소설 전집>에는 이상이 남긴 열 세편의 소설을 모두 수록하고 있습니다. 작품들은 <지도의 암실, 1932> <휴업과 사정, 1932> <지팡이 역사, 1934> <지주회시, 1936> <날개, 1936> <봉별기, 1936> <동해, 1937> <종생기, 1937> <환시기, 1938> <실화, 1939> <단발, 1939> <김유정, 1939> <십이월 십이 일, 1920>의 순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들은 발표된 순서대로 수록되어 있지만 유독 이상의 첫 번째 소설인 <십이월 십이 일>을 제일 끝에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153쪽이나 되는 부피때문이었을까요?
제목을 살펴보니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116쪽)”로 끝나는 <날개>를 제외하고는 읽은 기억도 내용을 들은 적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근대문학작품들을 천착해보지는 못했지만 읽는 흉내는 내보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 사람들의 삶을 읽어낼 자신이 없었던 지, 첫 작품을 읽기 전에 작품해설을 먼저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제 기억에도 작품해설을 먼저 읽는 책읽기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작품을 옮기신 권혁민교수님은 작품해설의 모두에 이상의 작품 <십이 월 십이 일>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죽지 못하는 실망과 살지 못하는 복수, 이 속에서 호흡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지금 희망한다. 그것은 살겠다는 희망도 죽겠다는 희망도 아무 것도 아니다. 다만 이 무서운 기록을 다 써서 마치기 전에는 나의 그 최후에 내가 차지할 행운은 찾아와 주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다. 무서운 기록이다. 펜은 나의 최후의 칼이다.(397쪽)” 스무살 청년 이상이 최후의 칼인 펜으로 기록해낸 무서운 소설을 통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상이 살았던 시절은 조선왕조의 봉건통치가 일제의 식민지배로 이어지면서 대중의 삶은 여전히 피폐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상의 소설작품은 별나지 않은 사람들의 하찮아 보이는 일상들이고 그 일상들은 특별한 사건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시나브로 마무리되는 것 같습니다. 기승전결이 없는 탓인지 읽으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하거나 가슴이 조이는 듯한 긴장감을 느낄 겨를조차 없어 맥이 빠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짚고 싶은 것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있을까 싶은 복잡해보이면서도 대범해 보이는 인간관계가 그때 당시에는 과연 가능했을까 싶은 부분입니다. <동해>에 등장하는 화자와 윤(尹) 그리고 임(姙)이의 노골적인 삼각관계. 그런가 하면, “영원히 선생님 ‘한 분’만을 사랑하지요. 어서 어서 저를 전적으로 선생님만의 것을 만들어 주십시오. 선생님의 ‘전용(專用)’이 되게 하십시오(167쪽).”라는 편지를 보낸 <종생기>의 정희가 사실은 S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무너지는 자신을 버텨보려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밝아 보이지 않는 그의 작품들에서 언뜻 죽음의 그림자가 읽히기도 합니다. 실제로 <단발>에서는 선이와 동반자살을 그리면서도 그녀가 수락할 것 같지 않아 “혼자 죽을 수양을 허지”라고 스스로를 달래기도 하지만 사실은 “죽음은 식전의 담배 한 모금보다도 쉽다. 그렇건만 죽음은 결코 그의 창호를 두드릴 리가 없으리라고 미리 넘겨짚고 있는 그였다.(223쪽)”고 미리 못박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만용은 부리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이상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요즈음에도 만날 수 있으려나 생각을 해보면 사람 사는 것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워낙 사람들의 삶이라는 것이 다양할 수 있으니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초벌 읽기에서 작품 속에 쉽게 녹아들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는 책읽기였습니다.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이 생경해보인 탓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