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 - 2012 제36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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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최민석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그리 두껍지 않지만 묵직하게 남는 것이 많았습니다. 전통과 권위 있는 문예지에서 신인상을 받고 등단하였지만 당장 생계가 막막하여 선배의 꼬임에 넘어가 야설을 쓰는 삼류 작가인 주인공 ‘남루한’이 한때는 세계 챔피언이었지만, 지금은 매미로부터 얻었다는 초능력 스티커를 파는 전직 복서 ‘공평수’의 자서전을 대필하게 되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앙금으로 남는 첫 번째, 신인상을 받고 등단한 촉망받는 신인작가라도 소설집이라도 낼라치면 빨라서 2년 늦으면 4년이나 걸린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한국문학계의 관례라는 것입니다. 그 두 번째, 복싱 프로모터를 하는 남루한의 아버지 남강호가 양정팔이라고 하는 유망주를 한눈에 알아보고 복싱을 시작하도록 권유하면서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탐욕일세(149쪽)”라고 말하는 장면.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사실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간혹 목표 지향적 인간 중에 눈앞의 푯대를 향해 돌진하는 유형이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 푯대 다음에 무엇이 있는지 보지 못하기도 한다.(156쪽)”라는 비유와 연결되어 요즈음을 사는 일부의 행태와 비교되는 것 같습니다.

 

그 세 번째. “그러니까, 우리는 평가에 목을 매고 평가에 울고 웃는 이상, 줄기차게 평가만 쫓아가게 돼. 그건 너무나 아슬아슬한 인생이라고. 나를 봐. 챔피언이지만, 한 번 진 걸로 영원한 패배자야. 게다가, 링 안에선 이겨 봤다고 쳐. 링 밖에선? 나는 완벽한 패배자야. 그건 모두 사람들이 오로지 승부에 집착하고, 결과만 기억하고, 땀 흘리는 과정을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야.(188쪽)” 이 부분은 공평수의 재기전을 두고 코치인 헤드의 자의적 해석이라는 토를 달고 있습니다만, 제가 바로 요양기관의 평가와 관련된 업무를 하고 있어 느낌이 별다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평가가 진행될수록 기관에서는 평가에 목을 매는 현상이 심화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공평수는 양정팔과 가진 재기전에서 마지막 12라운드까지 다운을 주고받는 치열한 대결을 펼쳐 관중의 찬사를 받게 됩니다만 그는 그 찬사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무덤에서 고요히 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뇌종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공평수가 50줄에 재기전에 나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다운이 거듭되는 치열한 대결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 라운드까지 버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차피 언젠가는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야. 어떻게 지느냐? 그래, 중요해. 사람들은 어쩌면 그걸 내 마지막 모습으로 기억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모습이 근사하지 않더라도, 초라하더라도, 보잘것없더라도, 상관없어. 헐렁한 트렁크스, 조명, 땀 냄새, 훈련, 실패로 터득한 내 스텝, 그걸 기다리는 링. 그것만으로 충분해. 이 위에 있을 때, 나는 필요한 사람이라는 게 느껴지거든.(217쪽)” 링에서 장열하게 스스로를 산화시켜 사람들이 자신을 복싱인이었음을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공평수의 애절한 희망이 느껴집니다.

 

작가 스스로 이런 절박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내 정신적 자위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 점에서 그저 나를 위로하기 위해 쓴 소설이 출판되어 당신의 시간과 금전을 쓰게 했다는 점에 깊이 사과드린다.(222쪽)”고 적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변명(?)을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고, 그런 그들에게 이 소설은 작은 희망의 촛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로서의 재기전인 소설을 마무리하여 공모전에 나선 남루한은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하지만 남루한은 공모전 탈락이 중요치 않게 되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공평수가 그랬듯 승부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자는 세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220쪽)” 승부에서 졌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정한 수준에 도달했다면 이긴 삶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뒷이야기가 무성한 것 같습니다. 후보가 인정한 결과를 두고 세상이 들끓을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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