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투자은행 2
구로키 료 지음, 최고은 옮김 / 펄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전편 <거대투자은행 1>이 1985년부터 1990년 말까지 그리고 있습니다. 1990년은 일본의 거품경제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해였습니다. 주가가 폭락하는 가운데서도 지수와 연계한 상품을 판매하여 수익을 내는 사람도 있었으니 참 알다가도 모를 동네가 아닐 수 없습니다. 후지사키씨는 이런 상황을 ‘암환자에게 모르핀을 주사하는’ 꼴이라고 자조하고 있습니다. 살로먼의 류진은 주가가 폭락하는 장세에서도 전환사채 차익거래로 1000억엔의 수익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잘 나갈 때 오히려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세익스피어의 <율리우스 카이사르> 4막 3장에 나오는 ‘There is a tide in the affairs of men.’(저자는 ‘인생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만,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의미가 더 가깝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는 경구가 아니더라도 잘 나갈 때 별 생각없이 폭주하다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거품경제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아오르는 과정에서 세계 금융계를 요리하는 큰 손들이 벌인 모럴 헤저드는 결국은 사직당국의 철퇴를 맞고 물러나면서 거품이 꺼지는 단초가 되었던 것인데, 전편에서 도덕성이 돋보이던 금융계 종사자들도 막상 끝없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는 추악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해서 주인공 가쓰라기의 모습이 대조되는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상투를 잡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위험을 경고하는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으나 그 사람의 경고는 대부분 무시되면서 추락으로 이어질 결정이 내려진다는 점입니다. 투자의 고수들과 각종 이론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는 금융계도 보통사람들이 사는 곳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전편에서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주무대가 뉴욕과 동경이었는데 후편에서는 모스코바, 런던, 아일랜드, 심지어는 동구의 부다페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로 무대를 옮겨가면서 읽는 재미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어렵기만한 금융 이야기 뿐 아니라 레저와 예술, 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화제에 올리고 있습니다. 저자의 박학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후편은 1990년 말부터 2003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국내은행에서 근무하던 가쓰라기씨가 미국계 투자은행 모건 스펜서에서 재능을 펼치다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일본 상업은행 투자업무 담당 상무이사로 영입하겠다는 제안을 받게 되는데, 앞서도 인용했던 셰익스피어극의 대사처럼 일은 언제나 풀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금새 입증되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가운데 일어났던 국제적인 사건을 인용하여 이야기에 변조를 넣던 작가는 9.11사건은 가쓰라기를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빌딩에 보내 사건 현장을 직접 들여다 보도록 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정도를 걷는 가쓰라기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이어져 결국은 모건 스펜서의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상황에서 금융 경제 재정 담당 대신의 요청을 받아 막 국유화한 은행의 CEO를 맡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그 배경에는 가쓰라기의 은사가 제자들에게 남긴 말이 여운이 되어 남아있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자네들은 졸업하면 다양한 길을 걸을 게야. 그리고 다양한 위치에서 여러 가지 판단을 하게 되겠지. 그럴 때 자신의 판단이 과연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 항상 생각해 보았으면 하네. 만일 법률이, 사회를 위한 자네들의 판단에 반한다면 법률을 바꾸기 위해 애써야 하네. 그리고 나라를 위해 힘써 주길 바라네.(316쪽)” 가쓰라기 개인의 입장에서는 보수가 많지 않아도 돈과 개인의 경력을 위해 일을 고르는 단계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일종의 사회를 위한 봉사의 의미일까요? 치열한 금융계의 부침을 뒤쫓던 이야기는 우아하면서도 조금은 맥빠지는 결말에 이르는 감이 없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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