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9.11테러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11년이 넘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이슬람 테러단체에 의하여 납치된 항공기가 돌진하여 충돌한 뒤 무너져 내려 엄청난 숫자의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한 사건입니다. TV를 통하여 전해지는 뉴스를 지켜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무고한 시민이 테러의 타깃이 되었다는 것으로 테러리스트에 대하여 분노했고, 이후 강화된 항공기 보안검색 때문에 유색인이라는 이유로 별도 보안검색을 받아야만 했던 불편함에 다시 분노하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을 일으킨 이슬람단체와 관련이 있는 나라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는 의문을 가져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9.11테러사건을 전후하여 미국에서 생활한 파키스탄 청년의 의식이 변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그리고 있는 파키스탄 출신 작가 모신 하미드의 소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읽으면서 이슬람교도, 혹은 9.11테러사건이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건물이 하나둘 무너지더군요. 그때, 나는 미소를 지었어요. 그래요. 혐오스럽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의 첫 반응을 놀랍게도 즐거움이었어요.(67쪽)” 소설의 주인공 찬게즈는 왜 그랬을까요? 희생자들이 발생한 것에 대한 가학적 사고의 결과라기보다는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테러공격을 받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고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리 세월이 흘렀다고는 해도 이런 생각을 직설적으로 토로하는 작품을 내놓은 작가의 대담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주인공은 같이 일하는 미국인 동료들을 의식하여 외양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적었지만, 종국에는 근무하던 회사를 그만두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꼭 9,11사건만이 배경이 되었던 것은 아니고 에리카와의 굴곡진 사랑과 이별이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보입니다.
소설은 인도의 펀자브지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파키스탄의 동쪽 끝 국경도시 라호르에 있는 어느 레스토랑에서 만난 미국남자에게 미국에서 보낸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이사이 두 사람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현재형으로 섞고 있는 독특한 형식입니다. 찬게즈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남자인 것은 양복을 입고 짧게 깍은 머리에 우람한 가슴을 가졌다고 적고 있어 눈치를 챌 수 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생각에 대한 부분이 눈길을 끄는 점이라고는 하지만, 주인공 찬게즈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하고 주로 기업체에 컨설팅을 전문적으로 해주는 언더우드샘슨이라는 회사에 취직하여 발군의 업무처리능력을 발휘하면서 한편으로는 졸업 무렵 그리스여행길에서 만난 에리카와 사랑이 시작되어 끝나기까지의 과정이 큰 줄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이 넓은 만큼 사람들도 다양하겠습니다만, 밖으로는 외향적으로 비치는 에리카는 사랑하던 이가 폐암으로 사망한 다음 그 사람과의 추억에 묶여 마음이 닫혀 있는 여성이기도 합니다. 한편 저자는 찬게즈의 성품은 에리카의 시선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또래에서 당신처럼 예의 바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 지루한 예의바름 말고요. 정중한 예의 바름 말이죠. 당신은 사람들에게 공간을 줘요.(26쪽)” 회사에서도 상사에게 신뢰감을 주는 타입이라는 것입니다.
찬게즈와 에리카의 사랑이 왜 이루어지지 못했는지는 미스터리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에리카의 정신적 갈등이 심화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점에 대하여 작가는 속시원하게 풀어놓지 않고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원제목 <The Reluctant Fundamentalist>를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라고 번역하여 제목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전에서 ‘reluctant’는 마음 내키지 않는, 마지못해 하는, 달갑지 않은 등의 뜻을 가지고 있고 reluctant dragon이라는 관용어를 ‘충돌을 피하려고 하는 지도자’라고 옮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reluctant'에는 고어로 반항[저항]하는, 다루기 힘드는 등의 의미가 있어 다소 의미의 차이가 있다고 보입니다. 일독한 느낌으로는 옮긴 제목처럼 주인공이 이슬람 근본주의자라고까지 할 정도로 교리에 철저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나 종국에는 칠레 출장길에 피상담자와의 접촉이 계기가 되어 회사를 정리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주인공의 행동이 미지근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제3세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독특한 경험이 되는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