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만났습니다. 고수, 한효주 주연의 정기훈감독 영화 <반창꼬>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쉽게 연결되지 않는 소방관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녀가 만나 사랑의 결실을 맺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긴박한 인명구조현장에서 언제나 무모하다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하지만 정작 아내의 생명이 경각에 이르렀을 때에도 현장을 지키느라 지켜주지 못한 소방관 강일(고수扮)은 여전히 죽은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한편 지나칠 정도로 똑똑한 의사 미수(한효주扮)는 응급실에서 만난 여자환자가 남편의 폭력에 의한 일시적 실신이라고 진단하고 돌려보내지만 환자는 곧 식물인간 상태가 되고 그 남편은 미수를 상대로 의료과오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소송전략상 환자의 남편의 폭력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강일의 도움이 필요한 미수는 의도적으로 강일에게 접근하지만 강일은 요지부동입니다.

 

결국 강일을 설득하기 위하여 사회봉사라는 명분으로 의무소방대원을 자원하여 강일과 근무를 같이 하게 된 미수는 강일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고, 강일 역시 천방지축인 미수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됩니다.

 

아직 개봉되지 않은 영화의 스토리를 미주알고주알 적는 것을 별로 반가워하시지 않을 것 같아 요정도로 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의 고리를 조금씩 당겨가는 단초는 미주가 가지고 있는 ‘실신(syncope)'이라는 고질병입니다. <알기 쉬운 의학용어 풀이집 제3판>에 따르면, 실신은 전반적인 근육의 약화와 동반하여 서있을 수 없고 의식을 소실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원인에 따라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의식을 관장하는 대뇌부위에 산소결핍이 일어나서 생기는 현상으로 부교감신경인 미주신경의 흥분에 의하여 혈압이 떨어져 유발되는 미주신경반사성 실신, 혈관운동반사에 결함이 있는 사람이 앉아 있다가 일어날 때 일시적으로 혈압이 떨어지면서 실신이 동반되는 체위성 저혈압, 부정맥이 있는 환자에서 심장박출량이 갑작스럽게 떨어져 유발되는 심장성 실신, 목에 있는 경정맥동에는 혈압에 대한 수용체가 있어 혈압이 높을 때 뇌에 신호를 보내 심박출량을 줄이고 혈압을 낮추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데, 경정맥동이 낮은 혈압에서 작동되어 생기는 경정맥동증후군 등이 있습니다. 미주의 경우는 극 후반에 정밀검사를 통해서 뇌종양이 미주신경을 압박해서 실신이 일어나는 것으로 밝혀지게 됩니다.

 

냉동창고의 현장에서 부상당한 대원을 응급구호한 미주가 현장에서 철수하던 중에 실신하여 쓰러지게 되고,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강일이 현장에 돌아와 미주를 구하려는 순간 냉동창고의 문이 닫히면서 두 사람이 갇히게 되고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두 사람의 사투가 이어지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의식을 잃어가는 미주의 체온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일은 서로의 옷을 벗긴 다음에 체온을 나누어주려 애를 쓴다는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온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옷을 벗기 보다는 오히려 복장을 더 단단하게 여며 열을 빼앗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영화의 줄거리에서 미주의 의료과오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응급실에 실려 온 젊은 여성은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는데, 그녀의 온몸에 멍든 자국과 그녀 남편의 몸에 새긴 문신을 본 미주는 남편으로부터 맞아서 생긴 것으로 판단을 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퇴원시키지만, 사실 환자는 혈액응고방지제를 먹고 있는 환자라서 멍이 쉽게 드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오만함과 단순한 선입관으로 오진을 한 것이지요. 문제는 자신의 잘 못을 쉽게 인정하여 환자 보호자에게 사과를 구하지 않은 미주는 병원에서 점차 입지를 잃게 되고, 식물인간상태에서 돌아오지 않은 아내를 지켜보다 지친 남편은 아내 곁에서 목을 매는 순간 미주가 뛰어들어 생명을 되돌려 놓습니다.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일 것입니다. 버리려 했던 자신의 생명을 미주가 구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는 미주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정재승과 김호교수님은 <쿨하게 사과하라; http://blog.joinsmsn.com/yang412/12147514>에서 쏘리웍스에 대하여 설명하였습니다. 의료과오와 관련된 상황에서도 의료진의 과실이 있었으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투명하게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오히려 피해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미주도 사태 초반에 상황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자신의 잘못을 빌었으면 일이 이토록 꼬여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강일과 미주가 서로 만나야 할 인연이었기 때문에 그랬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붕괴하는 건설현장에서 건물잔해에 깔린 남자를 구하기 위한 강일의 극단적인 선택을 보면서 “신이시여,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라고 했다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의 절절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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