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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성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평점 :
“나의 모든 소설은 이전에 발표한 소설 속에서 태어난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 나오는 젊은이들에서 <고요한 집>이 탄생했고, <고요한 집>에 나오는 파룩에게서 <하얀성>이 나왔다.”라고 오르한 파묵은 말했다고 합니다만, 엄밀하게 말하면 고요한 집에 등장하는 파룩이 <하얀성>의 배경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고요한 집;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57187>과 <하얀성>이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같습니다. 오히려 첫 작품인 <제브데트씨와 아들들>을 완성하고서 구상을 시작했다고 <하얀성>의 작품해설에서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구상을 <고요한 집>에 일부 반영한 것이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얀성>은 그의 엄청난 독서편력의 결과가 집대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하얀성>에는 이야기를 끌고 가는 베네치아 학자 출신 노예, 그리고 그와 닮은 터키 학자 호자가 등장하는데, 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을 비롯하여 쌍둥이가 등장하는 문학작품을 참고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끝부분에서 오스만인 호자는 나의 고향 베네치아로 건너가고 나는 호자로 변신하여 터키에 잔류하는 반전을 보이는데, 저자가 이런 반전을 유도한 이유는 오랜 세월을 통한 담론을 통하여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 즉 동서양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저자의 이런 문학적 경향은 2006년 스웨덴 한림원이 파묵을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블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216쪽)”고 한데서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밖에도 아드난 아드와르의 <오스만 터키의 과학>, 아서 케스틀러의 <몽유병자들>, 쉬헤일 윈베르의 <이스탄블 천문대> 등의 책에서 얻은 영감을 <하얀성>에 녹여냈다는 것입니다. 특히 몽유병자에서의 독일 천문학자 케플러의 해석 ‘나는 왜 나인가?’는 <하얀성>에 등장하는 나와 호자가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향하던 중 터키함대의 공격을 받아 포로가 되어 터키로 끌려간 주인공은 평소 읽어둔 의학지식을 활용하여 의학자 행세를 하면서 노역을 피하였을 뿐 아니라 터키의 학자 호자의 노예로 주어지면서 구속이 풀리고 호자와 함께 천문학, 생물학, 점성술, 의학, 무기제조 등 과학전반에 걸쳐 토론하고 연구를 계속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파디샤를 중심으로 한 파샤들 사이의 권력다툼이 그려지고 있고, 두 사람 역시 파디샤의 관심을 끌어 연구활동에 필요한 재정지원을 받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가 멸망하면서 그리스의 학문적 전통이 로마로 건너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오히려 터키 등 중동지방으로 많은 학문적 성과가 넘겨져 번역되어 연구되고 발전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파묵의 작품 곳곳에서 읽을 수 있는 유럽문화를 동경하는 터키의 분위기가 사실 이해되지 않는 점도 있습니다.
읽어가면서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17세기의 중반으로 되어 있음에도 흑사병이 퍼져서 터키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장면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중국과 아시아 내륙에서 유래한 흑사병은 1347년 킵차크 군대가 크림에서 제노바 교역소를 포위하고, 페스트 환자의 시체들을 노포(弩砲)로 도시를 향해 쏘아보냄으로써 유럽인들에게 전파되었다. 흑사병은 지중해 항구들로부터 퍼져나가 1347년 시칠리아, 1348년 북아프리카·이탈리아·스페인·영국·프랑스, 1349년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위스, 독일, 베넬룩스 3국, 1350년 스칸디나비아와 발트 해의 국가들에 영향을 끼쳤다. 흑사병은 1361~63, 1369~71, 1374~75, 1390, 1400, 1664~65년에 다시 유행”했다고 합니다. 14세기 전반에 걸쳐 유럽을 휩쓴 흑사병으로 약 2,500만명이 죽었다는 것이고, 영국의 경우 1300년과 비교하면 1400면에는 인구가 절반에 불과하였다니 유럽인들에게 흑사병은 공포 그 자체였을 것 같습니다.
이 가운데 1664년의 유행은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에 유행한 것이기 때문에 17세기 중반에 터키에서 흑사병이 대유행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시대적 배경에 대하여 17세기 중반으로 했지만 그 전후에 있었던 작은 삶의 단편들도 반영했다고 한 저자의 설명을 참고하면 이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얀성’이라는 제목에 대하여, 파디샤는 폴란드를 공략하기 위하여 출전하면서 호자가 개발한 무기(아마도 장갑차로 보입니다)를 가지고 가는데 역시 날씨와 전장의 상황 때문에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전투에 실패하고 마는데, 당시 공략하던 성이 바로 하얀색이었다고 적고 있습니다. “성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깃발이 걸린 탑에 지는 해의 희미한 붉은빛이 반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성은 하얀색이었다. 새하얗고 아름다웠다. 어쩐지 이렇게 아름답고 도달하지 못할 존재는 꿈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180쪽)” 결국 하얀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곳을 의미하는 것, 나아가 동서양이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