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1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뮤지컬 <레 미제라블>을 관람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보니 배를 곯고 있는 조카들을 위하여 한덩이 빵을 훔치다 붙잡히면서 시작한 감옥살이가 몇 차례 탈옥실패로 19년에 이르게 되면서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던 장 발장이 출소해서 만난 주교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요약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축약된 이야기를 전해 듣거나 요약본을 읽은 탓에 세세한 부분에 대한 기억이 없는 듯 합니다.

 

뮤지컬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전작읽기에 도전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시작한 <레 미제라블> 전작 읽기입니다. 민음사에서 불과 얼마 전에 내놓은 <레 미제라블> 전작입니다. 민음사판 <레 미제라블>은 원로 불문학자 정기수교수님께서 옮기셨는데, 정교수님은 1962년에는 처음으로 <레 미제라블> 프랑스판 원전을 완역 소개하신 바 있었다고 합니다.

 

1862년 3월 30일 처음 출간된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삼십오년 동안 마음속에 품어오던 이야기를 무려 17년 간에 걸쳐 완성해서 내놓은 것이라고 19세기 초반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사회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판사의 소개대로 “워털루 전쟁, 왕정복고, 폭동이라는 19세기 격변을 다룬 역사 소설이자 당시 사람들의 지난한 삶과 한을 담은 민중 소설”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즉, 이 작품을 통하여 당시를 살던 다양한 프랑스 사람들의 삶과 생각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한 저주받은 비천한 인간이 어떻게 성인이 되고, 어떻게 예수가 되고, 어떻게 하느님이 되는” 지를 52부에 걸쳐 그리고 있는 <레 미제라블>의 긴 이야기는 1815년 주인공 장 발장의 인생항로를 180도 바꾸는 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샤를 프랑수와 비앵브뉘 미리엘 주교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인간의 품성은 타고나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만든다고 믿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고 믿습니다.

 

법관 귀족가문에서 태어난 미리엘 주교는 타고나기를 착하게 타고났던 것 같습니다. 또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가 믿는 대로 행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 자신에게 속하는 부의 대부분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여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도둑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성무 이외에 제일 먼저 빈자와 환자와 고생하는 자에게 바쳤고 남는 시간에는 정원의 땅을 갈거나 독서하고 글을 쓰곤 했다고 합니다.  정원의 땅을 갈거나 독서하고 글을 쓰는 일은 모두 “뜰을 가꾸는 일”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인간의 정신도 뜰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삶을 저자는 다음과 같은 구절로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음하는 자와 죄를 회개하는 자에게 몸을 구부렸다. 이 세상이 그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질병처럼 보였다. 그는 도처에서 열병을 느끼고, 도처에서 고통스러운 소리를 들었으며, 불가해한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고, 상처를 치료하려고 애썼다.(110쪽)”

 

미리엘 주교를 통해서 당시 각박한 프랑스 사회에도 한 점의 외로운 촛불과 같은 존재가 있음을 시사한 작가는 19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주인공 장 발장을 이어 등장시켜 당시 사회의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감옥에서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끼의 식사나 지친 몸을 쉴 잠자리를 얻을 수 없는 사회는 이들의 생각이 더욱 비뚤어진 방향으로 돌아가도록 만들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사회의 풍조는 현대에 와서도 여전히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장 발장의 영혼은 점점 메말라갔는데 “마음이 메마르면 눈도 마른다. 형무소를 나올 때까지 십구년 동안 그는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었다.(173쪽)”고 작가는 기록하였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의 바닥인생에 속하던 장 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집에서 은촛대를 훔치고 길에서 만난 프티제르베의 은전 40수를 강탈하기에 이르기까지의 심리상태에 대하여 작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때까지 주위로부터 받은 천대와 무시로 인하여 쌓인 사람에 대한 적개감이 무의식중에 발현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파브롤의 소심한 가지 치는 일꾼이자 툴롱의 무서운 죄수였던 장 발장은 십구 년 동안 형무소에서 형성해 놓은 그대로 두 가지 악행을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는 자기가 받은 악에 대한 보복으로서 행하는 급속하고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악행이요. 둘째는 그러한 불행이 줄 수 있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서 마음속에서 따져 생각한, 진지하고 중대한 나머지 악행이다.(172쪽)”

 

이어서 장 발장의 인생항로에 영향을 미치는 두 번째 등장인물 팡틴의 삶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미리엘주교와의 만남을 통하여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 장 발장이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 시민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시장에까지 오르게 되는 몽트뢰유쉬르메르 출신인 팡틴이 바람둥이를 만나 임신을 하고 몰락하여 처참한 지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겪는 사람에게는 또 다른 고난이 닥친다는 말처럼 나락에 떨어진 팡틴은 또 다른 불운 때문에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되는데, 고향으로 가는 길에 만난 테나르디에 여인숙에서 어린 딸 코제트의 양육을 부탁하게 되는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여 자초한 일이기도 합니다.

 

고향에 돌아간 팡틴은 코제트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지만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이웃의 몸을 아끼지 않는 호기심으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서 같은 과정을 밟았던 장 발장을 만나게 되지만, 운명의 여신은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장 발장을 추적해온 자베르형사가 개입하면서 엉뚱한 인물 샹마티외를 장 발장으로 오인해서 감옥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팡틴을 위하여 코제트를 데려오기로 한 상황에서 일이 꼬이는 것이며 장 발장이 시험에 드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어렵사리 재판정에 출두하여 장 발장으로 오인되어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샹마티외를 방면시키기 위하여 자신이 장 발장임을 밝히게 되는데.... 작가는 이 순간을 “모든 군중은 다른 사람이 자기 대신이 유죄판결을 받지 않도록 자수하는 그의 그 단순하고도 숭엄한 행위를 대번에, 그리고 한눈에 이해했다.(489쪽)”고 기록했지만, 자베르형사로 대표되는 당시 프랑스의 법정신은 장 발장이 마들렌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수많은 기여에도 불구하고 그의 죄업을 처벌하려 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면 법정신도 시대상황에 따라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옮기신 정기수교수님께서는 이미 <레 미제라블>을 완역 소개하셨음인지, 불문학의 원로이심에도 불구하고 요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고전의 품격에서 벗어나지 않은 현대적 감각이 느껴지는 깔끔하신 번역으로 쉽게 읽혔다는 말씀을 덧붙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