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집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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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의 두 번째 장편소설입니다. 데뷔작인 <제브데트씨와 그 아들들>이 3대에 걸친 가족들과 그 친구들까지 얽혀 이스탄불, 앙카라 그리고 동부의 케마흐에 걸친 여러 곳을 무대로 이야기가 펼쳐지는 방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고요한 집>은 이스탄블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휴양도시 젠네트히사르를 무대로 하고 등장인물 역시 오래된 3층(혹은 4층) 가옥에 살고 있는 파트마라고 하는 아흔살 된 노파와 쉰다섯살 하인 레젭을 두 축으로 하여 구성되어 있어 단출해 보이지만 사실은 터키의 복잡한 사회상이 축소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파트마는 남편인 의사 셀라하틴이 정치적으로 몰락하여 이곳으로 쫓겨 올 때 같이 오게 되지만 남편은 개업보다는 백과사전을 편찬하여 명예를 되찾겠다는 야심에 매달리는 바람에 수입이 없어 집안의 물건을 하나둘 내가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데, 그 와중에 하녀와의 사이에 난장이 아들 레젭과 절름발이 아들 이스마일이 태어나게 됩니다. 두 아들은 케마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만 결국은 셀라하틴과 파트마 사이에 난 아들 도안이 이들을 다시 데려오고 레젭이 살림을 맡게 되면서 결국은 아흔된 의붓어머니를 돌보는 모한 동거관계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백과사전을 편찬하던 셀라하틴이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고, 그 아들 도안 부부 역시 세 아이를 두고 죽었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사는 오래된 집을 마을사람들은 ‘고요한집’이라고 부릅니다.

 

등장인물의 이런 관계는 파트마와 레젭의 생각의 흐름에 따른 회상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게 됩니다. 작가의 이런 서술은 의식의 흐름을 세밀하게 서술한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에서 만났던 기법이기도 합니다. 그밖에 <조용한 집>에서 눈에 띄는 독특한 기법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화자가 바뀐다는 점입니다. 장면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화자가 되는 기법은 처음 만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장면이 시작되고서 이야기를 어느 정도 따라가야 ‘나’가 누군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1980년 7월, 여름을 맞아 파트마의 손주 세 명이 이 곳을 찾아 일주일을 머무는 동안에 펼쳐지게 됩니다. 큰 손주 파룩은 역사가로서 이곳의 관공서에 보관되어 있는 고문서들을 뒤져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하여 책을 쓰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손녀 닐귄은 대학생인데 혁명주의자이며 막내 메틴은 고등학생인데 미국으로 가서 살겠다는 야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도착한 다음날 파트마와 함께 할아버지와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참배한 다음부터 세 명의 손주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파룩은 관공서를 찾아 오래된 문서를 뒤져 정리하는 한편 밤에는 시내에 나가 술을 마시기도 합니다. 닐귄은 바다에 나가 수영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신문을 사들고 오는 것이 일과입니다. 이런 닐귄을 바라보는 아이가 있습니다. 이스마일의 아들 하산입니다. 하산이 어울리는 패거리들은 이지역의 하층에 속하는 청년들로 공산당과 대립하는 이상주의자 집단입니다. 공산당과 싸울 군자금을 모은다는 핑계로 시장상인들에게 성금을 강제로 빼앗기도 하고, 페인트로 공산당을 반대하는 낙서를 적고 다니기도 합니다. 하산은 닐귄이 배다른 사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한편 매틴은 어렸을 적 같이 놀던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그 가운데 제일란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에 꽂혀 있습니다. 이들은 위태롭기만 합니다. 모여서 술을 마시고 그러다가 보트를 몰고 바다로 나가기도 하는데, 수영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아찔한 순간도 예사롭게 하고, 차를 몰고 나서면 지나는 차를 위협하여 도로가로 밀어붙이기도 하는 등 요즘으로 치면 폭주족이라 할 만합니다.

 

파묵은 “나의 모든 소설은 이전에 발표한 소설 속에서 태어난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 나오는 젊은이들에서 <고요한 집>이 탄생했고, <고요한 집>에 나오는 파룩에게서 <하얀성>이 나왔다.”고 했다는데, <고요한 집>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 나오는 젊은이들이 누구인지 쉽게 연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파트마의 회고 가운데 조명상인 제브데트씨가 전쟁중에 큰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정도, 그리고 니갼, 외메르, 지야 등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에 등장하는 제브데트 씨의 아내 니갼, 둘째 아들 레피크의 친구 외메르, 조카 지야와 동일인물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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