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 클럽 2
매튜 펄 지음, 이미정.장은수 옮김 / 펄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이야기가 1865년에 일어난 사건을 뒤쫓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사건의 시대적 배경에 1865년에 끝난 미국의 남북전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노예제도의 폐지를 둘러싼 남부와 북부의 갈등으로 빚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부지역이 노예제도를 반대한 이유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처럼 북부사람들의 인도주의적 성향 때문이라기보다는 농업이 발달한 남부에서 노예의 일손을 필요로 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공업이 발전한 북부에서는 값싼 흑인 노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는 점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남북전쟁은 1861년 4월 노예제도를 지지하던 남부 주들이 남부연합을 결성하여 미합중국으로부터 분리를 선언하고, 4월 12일 아메리카 남부 연합군(남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초반 기세를 올리던 남군은 1863년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패한 것을 고비로 점차 밀려 1865년 4월 9일 남군의 리 장군이 항복하면서 붕괴하고 1865년 11월 6일 최종적으로 항복함으로서 전쟁이 마무리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남북전쟁이 마무리단계에 있을 무렵으로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지역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점, 당시 북부에서도 금전을 주고 전쟁터로 가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사회불안 요인이 되었다는 점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힐리판사의 죽음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도망노예법이 대한 이해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도망노예법’은 도망간 노예를 소유주에게 돌려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법으로, 노예제도를 두고 갈등을 빚어온 남부와 북부가 극한상황을 피하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이 법을 계기로 노예제도에 대하여 막연하던 북부사람들이 흑인노예들의 잔학한 실상을 알게 되어 납북전쟁의 단초가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단테클럽으로 돌아와서 2부가 시작되면서 세 번째 희생자가 생기게 됩니다. 단테클럽의 핵심멤버인 로웰교수의 친구 제니슨의 폐쇄된 요새에서 끔찍하게 난자된 모습으로 발견된 것입니다. 제니슨의 부검에 참여한 홈즈교수는 심리적으로 혼란상태에 빠지고 단테클럽에서 탈퇴는 선언하지만 결국은 사건을 해결하는 단초를 발견해내게 됩니다. 그 단초는 역시 <신곡>의 한 구절에서 찾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단초를 찾았다고 해서 범인이 바로 들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이 텍스트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당시만 해도 연쇄살인범의 정신상태를 분석하는 등의 수사기법이 발달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 때라서 작가는 범인을 사이코패스라고 단정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 후반부에 드러나는 범인은 사고체계가 정상이 아닌 일종의 사이코패스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건을 뒤쫓는 사람들이 여럿인 까닭에 시선이 분산되는 부작용(?)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사건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간다는 구도가 어떻게 보면 셜록 홈즈와 같이 다방면에 탁월한 재능을 가진 한 사람의 영웅이 사건을 뒤쫓는 스토리구성과는 다른 맛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단테클럽>에서 연쇄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뒤쫓고 추가범행을 저지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노력을 감상하는 재미 이외에도 19세기 보스턴을 무대로 활동하던 롱펠로우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문인들의 가족 및 개인사, 혹은 그들 사이에 있었던 관계 등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읽을거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단테클럽>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줄곳 단테의 <신곡>을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사건수사의 줄기는 <신곡>에 나오는 결정적 한 구절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 그 전쟁을 견뎌 낼 준비를 하노라./ 고통과 연민으로 가득한 방랑의 길을,/ 내 기억은 이 모든 것을 틀림없이 기록하리라.(e io sol uno, m'apparecchiava a sostener la guerra, sì del cammino e sì de la pietate...)(126쪽)” 지옥에 첫발을 들여놓으려는 단테가 스스로의 마음을 다지는 장면을 전쟁터를 누벼온 자신의 경험을 녹여 쓴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건의 해결을 앞둔 클라이막스에는 적당한 톤으로 고조되는 위기상황이 조성되어야 하고, 위기는 뜻밖의 등장인물에 의하여 반전되면 극적인 효과를 즐길 수 있습니다만, 저자는 이런 공식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어 읽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더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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