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교양 강의
스티븐 핑커 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다음 국어사전에서는 교양(敎養)이란 “지식, 정서, 도덕 등을 바탕으로 길러진 고상하고 원만한 품성”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품성을 갖추기 위하여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거나, 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경로의 교양강좌에서 관련 분야의 전문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돌이켜 보면 예과시절에 의학교육에 필요한 필수과목 이외에도 교양과목들을 공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 되어 몇 가지밖에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국사, 문화사, 철학 등이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해당과목의 일반적인 사항으로, 당시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가 되었던 것을 다루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 소개하려는 <하버드 교양 강의>는 하버드 대학교 문리학부의 교양교육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진후인 1945년 <자유 사회의 교양교육>이란 이름의 책을 통하여 하버드대학은 “앞으로 우리 시민이 될 사람들을 가능한 많이 교육하여, 그들이 미국인이고 자유인이기에 갖는 책임과 혜택을 알게 하는 것”이라는 교육목표를 당당하게 선언하였다고 합니다(7쪽).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교양교육과정의 목표에 학부생들이 한국인이고, 자유인이기에 갖는 책임과 혜택을 알도록 명시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그때 당시에는 '유산과 변화‘에 초점을 둔 교육이라고 주로 해석된 교양교육과정은 1970년대에는 학생들에게 지식에 접근하는 주요 방법을 소개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다시 21세기 들어 기술에서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방법론이 바뀜에 따라 교육의 핵심을 새롭게 정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적지 않은 준비기간을 거쳐 2009년 시작된 새로운 교양교육과정은 “학생들이 하버드 대학교 강의실에서 배운 내용을 상아탑 밖에서도 그리고 졸업한 뒤에도 실생활에서 직접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 급변하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시민의 자질을 심어주고, 스스로를 문화의 산물이자 참가자로 인식하게 하며, 윤리의식을 고취케 하고자 한다.(8쪽)”고 합니다. 이처럼 하버드 대학의 변화는 시의적절하여 학부학생이 시대의 변화에 맞는 품성을 갖추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 하버드 대학은 학생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이외에도 대중교육이라는 사명도 수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대학 수업을 들을 능력이 되고 듣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정규 학교에 다니지 못한 사회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으로 ‘저녁 강의’와 ‘여름 강의’ 외에도 150개가 넘는 온라인 강의를 일부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의 대중교육의 일환으로 교양교육이 아우르는 다양한 예술·인문·과학 분야에서의 주제를 골라 각 분야를 대표하는 교수들의 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글들이 우리 시대의 주요 쟁점을 해박하고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데, 해당 분야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생각을 아우르며, 저자 나름대로의 판단을 더하고 있습니다. 각 주제의 말미에는 저자가 인용한 자료의 목록 뿐 만이 아니라 관심있는 독자들이 더 읽어 이해의 폭을 넓히고 독자 나름대로의 판단을 가지는데 도움이 될 참고도서의 목록을 덧붙이고 있습니다.(옮긴이는 해당 도서들이 국내 출간정보를 더하는 열성을 보여주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 열 개의 주제들 가운데 스티븐 핑커교수의 ‘인간정신’을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정신세계가 중요할 뿐만 아니라 밝혀져야 할 영역이 풍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간정신에 이어서 도덕, 지구사, 세계인권, 사이버공간, 진화, 종교, 질병, 에너지 및 환경,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학 등의 분야에서의 뜨거운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해당 주제들 모두 독립적으로 다루어도 한권 이상의 분량을 이룰 정도로 논의범위가 방대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30~50쪽 정도의 분량으로 요약되고 있어 수박 겉핥기식의 개론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개강좌의 특성상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들을 개괄하여 독자들은 관심에 따라서 필요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나, 각론에 해당하는 책들을 읽다보면 자칫 놓칠 수 있는 중심줄거리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소리]에 늘어놓는 저의 리뷰가 때로는 넋두리처럼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전체의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면 [북소리] 리뷰 원고의 심리적 한계를 넘길 듯하여 <하버드 교양강의>를 읽으면서 저에게 특별했던 주제 몇 가지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려 합니다.

 

아무래도 첫 번째 주제가 되는 ‘인간 정신’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언어심리학과 진화심리학을 강의하고 있는 스티븐 핑거교수가 쓴 글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에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심리학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실험자료들을 인용하여 기억과 착각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활동을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정신의 작동방식에 관한 인간의 심리 가운데 추론, 감정 그리고 사회관계와의 관련 등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은 정신의학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개인이 혹은 집단이 현실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심리학에 관한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정신’에 이어 ‘도덕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두 번째 주제는 철학과 스캔론교수의 글입니다. 금년 말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 ‘도덕성’이 우리사회에 큰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저자는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와 자신의 방식의 계약주의를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리주의에서 도덕은 사회 통제체계이며 비공식적 법이라는 공통적인 인식에서 출발하는데, 공리주의가 보편적 선(善)을 근거로 목표가 되고 정당화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계약주의에서의 도덕 기준은 사회 통제의 일차적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는데 있어 공리주의는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고려하지만, 계약주의는 한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정당화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도덕이 무엇이고, 그것이 왜 중요한가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도덕은 서로 다른 다양한 가치를 통합할 때 가장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82쪽)”는 점을 바탕으로 도덕에 대한 설명을 이끌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일각에서 보는 인권에 관한 현상과 관련하여 철학 공공정책을 전공하는 마티어스 리스교수의 ‘세계인권에 관한 철학적 탐구’는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인권에 관한 사회적 현상을 지적하는 저자의 다음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권은 해방을 뜻하는 가장 흔한 말이 되었다. 조직적인 힘이 마땅히 돌봐야 할 사람에게 되레 해를 입힐 경우 그것을 비난할 때, 마르크스주의적 표현이나 비판이론 또는 근대화이론이나 종속이론 아니면 ‘인간’의 권리와는 대조적으로 정의니 권리와 의무니 하는 도덕적 표현에 호소하기보다 인권에 호소하는 일이 잦아졌다.(124쪽)”

 

저자는 인권운동를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평가하기 보다는 철학에 기초한 인권의 개념을 논하고 있는데, 인권, 즉 인간의 권리 밑바탕에 개인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리는 갖는다는 생각이 있고, 따라서 그러한 권리 실현은 개인이 속한 국가의 관심사일 뿐 아니라 세계적 책임이 된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인권의 세계적 책임과 관련하여 도덕 상대주의에 대한 저자의 설명도 있어서,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인권의 상대주의 현상이 이해되지 않는 다는 점을 꼭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도덕 상대주의란 근본적 가치와 윤리적 신념은 문화와 밀착된다는 논리로, 해당 문화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거기에 진지하게 개입할 수 없다.(155쪽)”는 것인데 인권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의 특정집단이 북한 동포의 인권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될 때는 굳게 입을 다무는 현상을 도덕 상대주의로 설명이 가능할 것인가 여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컴퓨터과학을 담당하고 있는 해리 루이스교수의 ‘사이버공간에서의 자유’라는 제목의 글은 최근 우리사회에서도 커다란 문제가 되고 있는 사이버공간에 관한 통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열린 공간이라는 특성을 가진 인터넷공간에서 대부분의 네티즌은 자유를 넘어 방종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어 정도를 넘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이 자주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유를 즐기기 위하여 일정 수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공감할 수 없는 통제도 있다는 점을 꼬집기도 합니다. “우리는 나와 우리 아이들과 우리 사회를 기술이 만든 악막에게서 보호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두려운 악마를 억누를 목적으로 다양한 법과 규제를 제안하고 실행한다. 그것들은 더러는 정치적이고, 더러는 개인적이며, 더러는 상업적이다.(190쪽)”

 

인터넷을 통하여 일어나는 여론몰이 현상에 대한 분석과 해답을 보면서 2008년 우리사회를 달구었던 제2광우병파동을 떠올렸습니다. 저자가 “여론몰이에서 두려움은 자유보다 잘 먹힌다. 우리는 일어날 법하지 않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과장한다.(193쪽)”라고 적은 것처럼 2008년 당시, 때로는 괴담 수준의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정부는 아무런 대응없이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전문가들 가운데 일부는 인터넷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부축이기까지 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치닫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필자를 비롯한 소수의 전문가들이 나서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글로 사태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하였고 오랜 노력 끝에 결국 빛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루이스교수 역시 “두려움에는 지식이 약이다. 교육은 장기적으로 공포를 이긴다. 말에는 말로 대응해야 옳다는 것이 궁극적인 결론이다. 나쁜 정보에는 올바른 정보로 대응해야 하고, 거짓에는 진실로 대응해야 한다.(196쪽)”는 말로 정리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리학과의 조너선 로서스교수는 ‘진화의 증거’ 편에서 “나는 진화생물학을 가르칠 때, 세월과 더불어 생물 종이 변해온 실제 기록보다는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일어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시조새의 그림이 빠지는 등, 진화론을 부정하는 특정 종교의 움직임과 관련하여 교과과정을 담당하고 있는 부서에서 참고할 점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진화론을 부정하는 창조론과 이어 나온 지적설계론 그리고 이 이론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시된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이론의 허구를 비판하고, “우리 주위에 있는 생물의 다양성을 설명할 견고한 대안과학이론은 (진화론 이외에) 없다.(244쪽)”고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의과대학의 캐린 미셸스교수의 ‘질병의 과학’에 대한 느낌입니다. 19세기 중반 런던에서 발생한 콜레라를 역학조사방법으로 접근하여 확산을 방지한 존 스노우경의 사례를 빌어 역학의 기능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구방법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모순을 지적하면서 저자는 건강 과학뉴스를 비판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학부생을 비롯하여 일반대중이 갖추어야 할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요약하여 전달하려는 하버드 대학의 노력은 대학이 사회에 대한 책임의식에서 나온 결과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점과 이러한 교양과목에서는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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