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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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한 날씨가 이어지다보니 걷을 수 없는 신세가 안타깝습니다. 6월에 보스톤학회에 다녀오면서 얻은 무릎부상으로 걷기를 자제하라는 주치의 지시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아내와 함께 걷기에 좋은 코스를 따라 걷곤 했습니다(http://blog.joinsmsn.com/media/index.asp?uid=yang412&folder=42). 역시 걷기에는 청명한 가을이 제격입니다.

 

걸으러 나갈 수 없으니 걷기에 관한 책을 읽으며 아쉬움을 달래보려 했습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 사회학과의 다비드 르 브르통교수가 쓴 <걷기 예찬>입니다. 저자 역시 ‘움직이지 않고 오래 걷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 적합한 걷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연금 장소를 탐험과 명상의 장소로 탈바꿈시켜 가지고 그 장소에서 장기간에 걸침 미시적 여행을 시작한다. (…) 비록 공간은 협소해 보이지만 그래도 매우 다양한 여정이 제공된다.(86쪽)” 여기에서 눈치를 채셨겠지만, 에세이 모음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은 철학적이고 진지한 글 모음입니다.

 

저자는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9쪽)”고 설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걷는 이유는 건강을 위한 목적이 큰 탓에 아직은 걷는 매력을 충분히 느끼고 있지는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써내야 하는 글이 있는 경우에는 걸으면서 글의 틀을 생각하고 다듬는 경우도 있어 저자가 의미하는 걷기의 즐거움에 가까운 경우도 없지는 않은 듯합니다.

 

<걷기 예찬>에 실려 있는 글들은 성격에 따라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걷는 맛에 관한 저자의 생각은 ‘걷는 맛’에 담겨있습니다. ‘지평을 걷는 사람들’은 구도적 걷기에 나선 분들에 관한 글모음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별로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도시에서 걷는 맛에 관한 글은 ‘도시에서 걷기’에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걸으면서 얻을 수 있는 정신적 승화감은 ‘걷기의 정신성’에 담았습니다.

 

걷는 맛은 어떤 것일까요? 다른 지방을 여행할 때는 대개 비행기나 차량을 이용해서 현지에 도착한 다음 둘러보고 다음 여행지로 떠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입니다. 이런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장소는 대개 관광지이기 때문에 그 지방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곳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걸어서, 조금 발전시키면 자전거로 여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곳의 보통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 생활 그리고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21쪽)”라고 적고 있습니다. 걸으면서 동행하는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만, 그저 묵묵히 걸으면서 자연을 느끼는 것도 좋습니다. 저자는 이런 경우를 다음 처럼 비유하는 것 같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울려오는 소리들을 음미하고 즐기는 것이다. (…) 걷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자동차의 소음과 꽝꽝대는 카라디오의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세상 밖으로 외출한 것이다. 그는 세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68쪽)”

 

저자는 걷기에 관한 많은 저자들의 다양한 글들을 인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기도 하고 있어 걷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걷기에 대한 그의 생각은 복잡하고 바쁜 일상이라는 도시의 특성을 고려하면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도시에서 걷다보면 여기저기에서 예기치 않은 구경거리를 만날 수 있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취재를 위하여 외국의 도시를 방문하는 대기자는 당장 취재원으로 달려가는 피라미들과는 달리 낯선 도시의 거리를 목적없이 걸으면서 그 도시의 구체적인 삶을 느끼려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 경우는 처음 방문하는 외국의 도시에 도착하면 거리로 나서기 전에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 도시가 안전한지 여부를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저자의 주장은 시골길의 여유로움을 찬양한 피에르 쌍소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 바람부는 길에서; http://blog.joinsmsn.com/yang412/12286006>에서 도시 역시 우리에게 소리를 들려주고 냄새를 풍기고, 감촉을 느끼게 한다고 하면서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주말에 집을 나서 걷는 경우와 달리 여러 날을 머물게 되는 여행을 하는 경우 여행지에서 겪는 대소사를 글로 정리하기도 합니다. 저자 역시 이런 점을 ‘글로 쓰는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간추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이란 시간이 흐르면 흐려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여행의추억을 기억에만 갈무리하는 것은 좋지 못한 버릇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행하면서 얻은 느낌은 바로바로 글로 정리하고 사진을 덧붙여 놓으면 좋은 기록이 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걸을 수 없는 저의 안타까운 시간을 위로해준 좋은 읽을거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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