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 1 민음사 모던 클래식 27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하버드대학 강연록 <소설과 소설가>를 읽어가다가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그의 소설 <순수박물관>을 먼저 읽게 되었습니다. 집착적인 사랑에 빠진 케말이라는 남자 주인공의 행동과 느낌을 주제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순수박물관이 출판된 다음 작가는 많은 독자들로부터 “파묵씨, 당신은 이 모든 것들을 정말로 경험했나요? 파묵씨, 당신이 케말인가요?(소설과 소설가 40쪽)”라는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작가가 소설의 주인공 케말의 사랑을 사실처럼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어 자전적 소설이라고 믿게 되는 독자들이 많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9723>에서 “소설은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하면서, “내 이력서 속 자아로부터 그 어떤 인물도 도출되지 않았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355쪽)”라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즉 소설을 통하여 자신의 경험을 그려내고 있지는 않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 혹은 주변인물이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소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순수박물관>은 파묵이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에 쓴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합니다.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을 그려내고 있다고 요약하고 있습니다만, 집착도 이 정도면 병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975년 터키 이스탄불,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 모든 것이 넉넉하게 성장한 케말은 역시 훌륭한 신부감인 시벨과 약혼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어렸을 적 가깝게 지냈던 먼 친척의 딸인 퓌순을 만나면서 묘하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녀를 유혹하여 관계를 맺게 된 케말은 한편으로는 시벨과의 약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약혼식장에 퓌순과 그 가족을 초대하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을 벌이게 되고,약혼식장에서 자신이 퓌순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서 퓌순이 잠적하게 됩니다. 퓌순의 종적이 묘연해지자 케말의 일상은 흩어지면서 약혼녀 시벨과의 관계 역시 뒤틀리게 되고 종국에는 거리를 두었다가 종국에는 파경에 이르게 되는데 까지 1부가 진행됩니다.

 

사실 사랑하는 연인과의 약혼을 앞둔 남성이 갑자기 등장한 먼 친척 여인을 적극적으로 유혹하여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이 현실적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터키사회가 혼전관계에 대하여 보수적이고 서구문화를 접한 여성이 혼전순결을 지킨다는 터부를 깨는 용감함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이야기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여성들이 혼전 관계 혹은 혼외정사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는 것은 다소 이질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주인공 케말과 그 친구들은 최근 화제에 올랐던 브이 소사이어티처럼 ‘당신은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어요’라는 케말의 친구 자임의 별명처럼 방탕한 생활이라고 할 정도의 행적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케말은 퓌순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녀와 사랑에 빠졌던 것일까? 나는 깊은 행복감을 느꼈고 또 걱정스러웠다. 나의 영혼이 이 행복을 진지하게 여기는 위험과 가볍게 여기는 통속성 사이에 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내 머리는 혼란스러워졌다.(86쪽)”고 적고 있는 것으로 보아 퓌순을 진지하게 사랑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퓌순을 약혼식에 부른 것은 그의 도덕성을 근본적으로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한편 퓌순이 사라진 다음에 그녀에 대한 집착의 정도가 심해지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으로 보입니다. ‘눈에서 벗어나면 마음에서도 사라진다’는 유명한 말처럼 보이지 않으면 불같던 사랑도 조금씩 식어가기 마련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랑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사라진 알베르틴; http://blog.joinsmsn.com/yang412/12927835>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다 독백하면서도 그녀가 사라진 다음에 사랑했었노라고 중얼거리는 주인공을 보면 정신이 온전한지 걱정이 될 지경입니다. 파묵 역시 대화체로 풀어가던 이야기를 사라진 퓌순의 뒤를 쫓는 케말의 행적과 생각의 흐름은 프루스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이 아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1부에서는 사라졌던 퓌순이 최근 결혼한 상태로 다시 등장하는데까지입니다. 다시 나타난 퓌순과 케말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아주 궁금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