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 - 채소, 인류 최대의 스캔들
리베카 룹 지음, 박유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섬유질이 많은 과일과 채소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강조되었던 적이 있나 싶었습니다. 지나친 육식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현상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사실 서구에서는 육식 중심의 식단이 구성되는데 반하여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지역은 채식에 의존하는 식단을 구성해왔기 때문에 육류의 섭취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벌써 육식의 문제점을 논하게 되었으니 금석지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육식의 폐해가 논의된 것은 근대 들어서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19세기 미국의 채식주의자 실베스터 그레이엄에 따르면 “노아의 홍수에 앞선 ‘엄청난 악행과 끔찍한 폭행은 과도한 육식이 초래한 결과였다.(12쪽)”는 것이며, 19세기 미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콜레라 발생은 고기, 기름, 소금, 향신료, 케첩, 머스터드, 독한 술에 탐닉하는 바람에 신체가 약해진 미국인들이 범죄, 성적 죄악, 정신·육체질환의 위험에 노출된 탓이라는 주장을 했다는 것인데, 의학적으로 검증된 이야기인지 모르겠습니다.

 

리베카 룹이 쓴 <당근,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다>에서는 여기 예를 든 것처럼 20종의 야채과 관련된 동서고금의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망라해서 아주 흥미롭게 풀어놓고 있는 읽을거리입니다. 저자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은 채소에는, 오이, 셀러리, 고추, 양파, 아스파라거스, 빈(콩), 비트, 양배추, 당근, 옥수수, 가지, 상추, 멜론, 완두콩, 감자, 호박, 래디시, 시금치, 토마토, 순무입니다. 대부분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채소들입니다만, 셀러리, 아스파라거스와 같이 최근에 우리 밥상에 오른 채소도 있는가하면 비트나 래디시와 같이 여전히 생소한 채소들도 있습니다.

 

앞서도 동서고금의 자료들을 망라해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각 채소들에 엮인 뒷이야기에서 뽑아낸 제목들이 기발하다는 점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옥수수, 흡혈귀를 만들어내다’라는 제목을 읽다보면 옥수수와 흡혈귀가 어떻게 연결이 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참거리로 즐겨 먹는 옥수수에는 라이신과 트립토판이 부족하며 옥수수에 들어있는 니아신이 다른 분자와 단단하게 결합하고 있어 장에서 잘 흡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은 니아신이 부족하기 쉽고, 니아신이 부족하면 펠라그라에 잘 걸린다는 것입니다. 펠라그라병에걸린 환자는 햇볓에 민감하고, 혀부종, 치매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데 장기간에 걸쳐 이 소모성 질환을 앓다가 사망하는 과정에서 유럽 흡혈귀 전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추측하고 있는 것입니다.

 

옥수수의 제목에 대한 설명은 그나마 어느 정도의 분량을 들여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이 책의 제목이 되기도 하는 ‘당근, 트로이전쟁을 승리로 이끌다’는 제목의 설명은 단지 한 줄에 불과합니다. “아가멤논의 병사들이 트로이 목마 안에서 ‘설사를 멈추게 하려고’ 아작아작 먹었다는 당근도…(186쪽)”가 전부이니 주의해서 읽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으로 숨은 글씨 찾기라도 하는 기분입니다.

 

기상천외한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오래된 옛날의 음식 레시피에서부터, 여기 예를 들고 있는 채소들이 원형이 되는 야생종이 언제쯤 우리 밥상에 오르게 되었는지, 야생종을 처음 채소화한 지역으로부터 글로벌하게 퍼져나간 경로(주로 신대륙과 유럽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는 제한점은 있습니다만), 그리고 이들의 소소한 형제들까지도 들어서 설명하는 친절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라틴어로 된 어려운 학명을 늘어놓다 보니 쉽게 읽혀지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설명하고 있는 채소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탁에서 화제를 풍성하게 해줄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서 강조되고 있는 신토불이와 제철음식이 좋다는 이야기도 읽을 수 있습니다. 대규모 농장에서 재배되어 국경을 넘어서 유통시키는 근래의 식품유통방식으로 인하여 무너져 가고 있는 지역식품과 농장의 쇠퇴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으로 내놓고 있는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자고 하는 캠페인입니다. 지역농산물을 먹는 사람을 로커보어(Locavore)라고 한다니 말입니다.

 

가끔 빈혈로 고생하는 아내에게 도움이 될 내용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입니다. 시금치가 붉은 고기보다도 철분이 많이 들어있는 채소라는 점입니다. 다만 그냥 먹어서는 전체의 5%밖에 흡수할 수 없어 오렌지 주스와 같이 비타민 C가 풍부한 음식을 같이 먹으면 흡수량을 상당히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전해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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