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전집 5
밀란 쿤데라 지음, 백선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웃음과 망각이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단어를 묶어 제목으로 정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쿤데라는 소설 <웃음과 망각의 책>에 모두 7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7개의 이야기는 간혹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혀 독립된 이야기처럼 보이기 때문에 소설집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잃어버린 편지들’이나 ‘천사들’과 같이 같은 제목을 단 이야기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독립된 이야기 모음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가 헷갈릴 수도 있겠다싶었던지 작가는 이 작품의 제목 뿐 아니라 성격까지도 설명하고 나섰습니다. “이 책 전체는 변주 형식의 소설이다. 서로 다른 부분들이 나로서는 이해하려면 막막함에 빠져들게 되는 한 테마의 내부로, 한 생각의 내부로, 하나뿐인 독특한 상황의 내부로 인도하는 여행의 서로 다른 단계처럼 이어진다. 이것은 타미나의 소설이다. 타미나가 무대를 떠나는 순간에는 타미나를 위한 소설이 된다. 타미나는 주인공이자 주된 청중이다. 다른 이야기들은 그녀 이야기에 대한 변주들이며 거울 속 처럼 그녀 삶 속에서 서로 만난다. 이것은 웃음과 망각에 관한, 망각과 프라하에 관한, 프라하와 천사들에 관한 책이다.(P.310)”

 

음악에서 주로 사용되는 변주(變奏)란 ‘음악을 선율적·화성적·대위법적으로 변화시키는 기술’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편지들’의 주인공 타미나가 다시 등장하는 ‘천사들’에서 쿤데라는 오랜 투병에 지친 아버지가 손을 잡아끌어 베토벤의 소나타 「op 111」의 악보를 펼처보이면서 “이젠 난 알아!”라고 한 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토벤은 (음악사상 처음으로) 변주를 최고 형태로 만들고 거기에 그의 가장 아름다운 생각을 집어넣었다.(300쪽)”, “교향곡은 음악의 서사시다. 교향곡은 외부 세계의 무한을 가로질러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인도하며 점점 더 멀어지는 여행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변주 또한 여행이다. 변주에서 베토벤은 탐험할 다른 공간을 발견했던 것이다. 변주는 새로운 여행에의 초대였다.(308쪽)” 음악의 변주가 새로운 영역의 발견이었던 것처럼 쿤데라는 인간이 거대한 무한의 심연과 작은 무한의 심연 사이에서 산다고 한 파스칼의 생각을 인용하여 자신의 작품세계에서 펼쳐 놓은 변주는 모든 것 속에 감춰진 내면세계의 무한한 다양성 속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보았던 것 같습니다.(308쪽)

 

웃음과 망각에 관한 변주를 통하여 쿤데라가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쩌면 소련의 꼭두각시들에 점령당한 조국을 등지고 떠난 사람들, 혹은 어쩔 수 없이 남은 사람들이 겪는 정체성의 해체과정을 에둘러 혹은 콕 짚고 있다고 읽었습니다.

 

두 개의 ‘잃어버린 편지들’에서는 조국을 떠나지 못한 미레크가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감추고 싶은 기록들은 헤어진 연인 즈데나와 주고받았던 끔찍할 정도로 감상적인 편지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잃어버린 편지들’에서는 조국을 등지고 떠난 타미나가 망명길에 들고 나설 수 없어 시댁에 맡겨두었던 편지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그리고 있는데, 편지는 죽은 남편과 같이 한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편지들’에서 미레크는 ‘인간의 권력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11쪽)’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과거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옌데 암살은 러시아의 보헤미아 침공에 관한 기억을 금세 뒤덮어 버렸고, 방글라데시의 유혈 사태는 아옌데를 잊게 했으며, 시나이 사막 전쟁은 방글라데시의 울부짖음을 뒤덮었고, 캄보디아 학살은 시나이를 잊게 했으며,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깡그리 잊을 때까지 사건이 이어졌다.(19쪽)” 쿤데라가 체코 동포들이 쓰라린 기억을 망각해가는 것을 걱정한 것처럼 우리 역시 일본이 지난 세기 우리선조를 비롯하여 아시아 주변국에 저질렀던 만행을 잊어가는 것을 걱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나서서 전쟁중에 저질렀던 반인륜적 행위를 철저하게 반성해온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자신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기를 쓰고 부정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과거를 망각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쿤데라는 ‘천사들’에서 웃음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의 웃음과 악마들의 웃음을 대비시키면서도 애초부터 웃음은 악마의 영역에 속하였다고 하는데, “웃음에는 어딘지 사악한 데가 있으며 또한 웃음에는 편안한 안도감을 주는 측면도 있다.(122쪽)고 합니다. 웃음은 곧 쾌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쾌락의 범위에는 ”먹는 것, 마시는 것, 배뇨하는 것, 만지는 것, 듣는 것, 혹은 그저 존재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할 수 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등장하는 호르헤 수도사가 수도원의 장서관의 비밀장소에 감추고자 했던 서책이 바로 그리스 희곡을 바탕으로 한 웃음을 다룬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2편’이었던 것은 중세기독교 사회에서는 웃음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쿤데라는 웃음으로 대표하는 쾌락주의가 조국의 어두운 현실을 도피하려는 일탈된 행동이라는 비판으로 읽힌다는 점입니다. ‘엄마’에 서 마르케타와 에바가 카렐과 함께하는 성행위라던가 ‘리토스트’의 여주인공 크리스틴의 외도를 통하여, 혹은 ‘경계선’에서 바바라가 주도하는 집단 성행위 등이 그 예가 될 것 같습니다.

 

쿤데라가 웃음을 망각과 관련지은 뜻을 ‘경계선’에서 새길 수 있을 듯합니다. “얀에게는 그와 마찬가지로 옛 조국을 떠나서 잃어버린 자유를 위해 투쟁에 모든 시간을 바친 친구들이 있다. (…) 그들은 경계를 보고 경계 너머로 미끄러져 들어갈까 봐 겁이 나서 고개를 돌렸다. 경계 너머에서는 고문당한 그들 민족의 언어가 이매 새들의 지저귐처럼 아무 의미 없는 소음일 뿐이었다.(405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