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 소돔과 고모라 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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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 후편은 전편에 이어 발베크가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드렸던 살롱문화는 파리와 같은 대도시 말고도 시골에서도 그곳에서 사는 귀족들이 중심이 되는 살롱문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파리의 살롱와 비교되지 않는 수준이겠습니다. 발베크 부근에 사는 베르뒤렝씨와 그들이 세들고 있는 집의 주인인 캉부르메르씨의 살롱이 등장하는데, 주무대는 베르뒤렝씨댁이지만, 두 집안이 은근히 대립하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어 당시 유명 살롱들끼리 참석하는 인사들의 면면에 따라서 수준이 비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베크의 살롱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인사들은 파리의 게르망트공작 살롱이나 스완씨의 살롱에서 이미 낯이 익은 분들이기도 합니다. 휴양지인 발베크로 쉬러온 파리의 인사들을 유치해서 살롱의 명성(?)을 드높이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라 싶기도 합니다.

 

발베크의 살롱에서는 몰리에르의 연극과 발자크의 문학세계가 화제에 많이 오르는 것 같습니다. 17세기 중반 활동한 몰리에르는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몰리에르는 전통적인 희극의 형식을 수용하면서도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대비시켜 이것들의 상호관계에서 희극적 요소를 추출해내는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의 대학연극반에서도 몰리에르의 <강제결혼>이 레파토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의사 망나니>에서는 몰리에르가 의사를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으로 그려내고 있던지 화가 날 지경이었던 경험도 생각납니다. 몰리에르는 의사를 엄청나게 싫어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발자크는 19세기 초반에 명성을 얻은 소설가입니다. 따라서 프루스트가 사교계에 드나들 무렵 파리의 살롱가에서 화제에 많이 올랐던 것들을 기억하고서 소설에 반영하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를 주제로 하고 있어, 하편에서는 주로 샤를뤼스씨와 모렐씨 사이의 관계를 주로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작은 할아버지댁에서 일했던 사람의 아들인 모렐은 자신의 내력을 감춰달라고 주인공에게 요청하면서도 요청을 승낙하자마자 태도가 일변하여 으스대는 꼴을 보이는데, 이런 자의 비밀을 지켜줘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작가의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주인공과 알베르틴의 관계입니다. 전편에서는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성향의 흔적을 드러내지만 후편을 통하여 주인공과의 연애는 깊어져 혹시 결혼으로 이어질까 어머니가 걱정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리고 성장기에는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갈구하는 상황을 묘사하던 주인공이 청년이 되어 많은 여성들과의 사랑을 그려내면서부터는 이야기 가운데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을 별로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발베크에서 지내는 동안 어머니에 대한 설명은 몇 줄 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알베르틴이 등장한 이후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스케치를 다니는 알베르틴을 위하여 자동차를 세내어 편의를 봐준다든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동숙을 한다거나 하다가도 헤어질 결심을 한다거나 하는 등입니다. 편집광적인 성격을 드려냈던 스완씨와는 달리 주인공은 불안심리가 두드러지는 성격으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전편에서보다 동성애자들의 심리나 행동양태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제 마음에 드는 이들에겐 열렬히 친절한 만큼이나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이들을 멸시하는 게 성도착자들의 버릇이다.(53쪽)”라는 설명이나 게르망트 공작이 모렐을 꼬드겨서 홍등가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게된 샤를뤼스씨가 파리에서 쥐피앙을 불러들어 잠복하기도 합니다. 동성애자의 경우 이성애자들보다 질투의 정도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새로 생긴 동성애 상대를 감시하기 위하여 옛날 동성애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이 상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은 곳곳에서 고유명사의 어원을 설명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능숙한 외교관인 오르메송(Ormesson)의 이름에는 베르길리우스가 좋아한 울무스(ulmus, 느릅나무), 또는 울름(Ulm)이라는 도시 이름이 되기도 하는 오름(orme, 느릅나무)이 보입니다.(70쪽)” 아마도 이런 화제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박식함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1920년대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프루스트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망령을 예언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일본군이 우리의 비잔틴 문에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판국에, 사회 풍조로 된 반군국주의자들이 자유시의 주된 효력에 관해 엄숙하게 토론하다니, 착실한 프랑스 사람, 아니 착실한 유럽 사람이 할 짓이 못 됩니다.(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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