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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하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8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전편에서 실종되었던 장서관 사서보조 베렝가리오 수도사가 사체로 발견되는데, 그의 죽음은 묵시록의 예언을 증거하는 듯 보입니다. 세명의 수도사의 죽음이 미궁에 빠져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황제측 사절단이 먼저 도착하고 이어서 교황측 사절단도 도착하게 됩니다.
교황측 사절단의 일원인 이단심문관 베르나르 기는 경호병을 이끌고 수도원 안팎을 조사하다가 수상한 행적을 벌이는 식료계 살바토레가 마을 여자를 붙잡는 것이 계기가 되어 레미지오 수도사의 과거행적이 들통나게 됩니다. 소형제회에 소속되었다가 돌치니와 함께 반교황 진영에서 활동하다가 토벌대에 몰리자 돌치니가 잔당에게 전하는 밀서를 휴대하고 탈출한 레미지오가 이 수도원에 숨어들었다는 사실이 심문을 통해서 밝혀지게 되는데, 이 사건은 교황측과 황제측 사절단의 청빈, 즉 소유에 관한 복음서의 해석을 두고 팽팽하게 맞서던 대립의 기울기를 한순간에 교황 쪽으로 기울게 만들었습니다.
청빈을 내세우는 프란체스코수도회에서는 개인의 소유에 관하여 재산으로서의 소유와 일상의 소비재로서의 소유로 구분하고 일상의 소비재로서의 소유 이외에 교회의 재산소유를 부정하는 입장인 반면, 교황측은 교회에 소속된 신도들의 공동생활에 필요한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고 있었음을 들어 반박하였습니다. 사실 고래로 문헌의 자구의 해석을 두고 서로 다른 논리가 나오는 경우 쉽게 합일점을 찾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복음서의 해석을 두고 시작된 설전은 순식간에 상대에 대한 험담으로 발전하여 감정대립이 되고 마는데, 베르나르 심문관이 레미지오를 체포하는 것으로 순식간에 협상은 결렬되고 교황측 사절단은 레미지오를 아비뇽으로 압송하여 떠나게 됩니다.
사실 사절단의 협상은 아비뇽으로 대표되는 교황청의 부패에 반기를 들고 청빈을 내세운 수도회를 황제측이 수용하여 극한으로 치닫던 대립을 해소하려는 시도였던 것으로 보이나 내막을 보면 협상을 깨뜨리려는 교황 측의 전략이 숨어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수도원에서 내밀하게 일어나는 일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무색할 지경으로 타락의 극치에 이르고 있다 할 지경이라서 종국에는 불어 닥친 파멸이 오히려 필연이었구나 싶습니다.
교황측과 황제측 사절단의 협상이 진행되는 사이 본초학자 세베리노가 시약소에서 타살된 채로 발견되어 장서관을 둘러싼 미스테리가 절정으로 치닫게 되지만,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들은 여전히 실마리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셜록 홈즈나 포아로 탐정들은 척보면 단서를 꿰뚫어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는 모습에 익숙한 독자 입장에서 답답하다 싶은 순간, 사건은 우연한 순간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는 윌리엄 수도사의 말처럼 전기를 맞게 됩니다.
역시 마지막 무대는 미스터리가 숨겨져 있는 장소가 되어야 제격인 것 같습니다. 사건의 실마리는 모든 것이 장서관의 숨겨진 장소 아프리카의 끝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권에서는 장서관의 이미지가 보르헤스의 <픽션들>에서 나오는 ‘바벨의 도서관’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하권에서 드러나는 장서관의 실제 모습은 오히려 에코가 바벨의 도서관의 이미지를 왜곡시키는 측면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보르헤스의 도서관 복도에 붙어 있는 거울은 사물을 복제해서 도서관이 무한하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데 반하여 에코의 장서관에 등장하는 거울은 사물을 왜곡시켜 잠입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미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입니다. 보르헤스는 도서관이 모든 책을 소장하고 있고, 도서관은 빵이나 피라미드 혹은 그 어떤 것이 될 수도 있는 활용하기에 따라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지만, 에코는 이 수도원으로 대표되는 도서관이 심지어는 수도사들마저도 읽어서는 안되는 금서를 감추는, 일종의 정보를 왜곡시키는 곳이라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이 장서관은 원래 서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모양이다만 이제는 그 서책을 묻어버리고 있구나.(712쪽)” 문제는 금서로 지정되는 기준은 복음서의 해석에 따라서 이루어지는데 그 해석은 수도원장과 사서만이 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소수의 편향된 철학에 따라서 대중의 권리가 제한되는 불합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장미의 이름>에서 등장하는 장서관과 호르헤 수도사는 보르헤스에 대한 에코의 헌정이라고 해석하는 것 같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보르헤스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힐 수 있어, ‘바벨의 도서관’을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끝으로 서책에 대한 보르헤스와 에코의 기호학적 해석을 인용합니다. 보르헤스는 “모든 책이 서로 다를지라도 동일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즉, 띄어쓰기 공간과 마침표, 쉽표, 그리고 스물두 개의 철자기호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픽션들 102쪽)”라고 은유적으로 표현한 반면, 에코는 “서책은 하나의 기호를 밝히는 또 하나의 기호로 되어 있다. 기호는 이렇게 모여서 한 사상(事象)의 모습을 증언하는 게다. 이를 읽는 눈이 없으면, 서책은 아무런 개념도 낳지 못하는 기호를 담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런 서책은 벙어리나 다를 바 없다.(7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