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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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아카데미의 보르헤스 강좌에서 다룬 두 번째 텍스트는 <알레프>였습니다. 1949년에 발표된 <알레프>는 <픽션들>과 더불어 보르헤스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대표작이라고 합니다. 초판 <알레프>에는 모두 열세편의 단편을 수록했는데, 1952년 네편을 더해서 모두 열입곱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알레프>에 실린 작품들 가운데 ‘엠마 순스’와 ‘전사와 여자 포로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환상문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데, 번역하신 송병선교수님은 “그는 환상문학을 목적이 아니라, 절대적 진리나 믿음을 파괴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면서, 이 장르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224쪽)”고 적고 있습니다.

 

픽션들에서 차용했던 미로(迷路)는 <알레프>에 실린 ‘자기 미로에서 죽은 이븐 하캄 알 보크하리’와 ‘두 명의 왕과 두 개의 미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픽션들>에서 심플하면서도 심오한 동양적 미로였다면 ‘자기 미로에서 죽은 이븐 하캄 알 보크하리’에서 차용한 미로는 크레타섬에 있었다는 미궁의 구조를 연상케합니다. 하지만 ‘두 명의 왕과 두 개의 미로’에서는 아무런 장치가 없는 열린 공간, 즉 사막 한 가운데를 미로로 차용하여 사람을 가두고 있습니다.

 

<픽션들>과 닮은 점이 미로라고 한다면 다른 점은 바로 죽음과 남미적 분위기가 물씬한 가우초가 등장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 ‘죽은 사람’, ‘또 다른 죽음’ 등은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진시황이 들었더라면 분명 사람을 보냈을 영생을 얻게 되는 강물을 마시게 된 주인공이 오랜 세월을 살면서 다양한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앞서 <픽션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78043>에서도 잠깐 말씀드렸던 팔림세스트기법인데 저는 이 단편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방영되었던 영국드라마 <닥터 후>가 생각난 이유는 아마도 영생을 얻은 시간여행자가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을 증언하고 심지어는 개입까지 한다는 설정이 바로 이 이 작품의 분위기와 닮았다 싶어서입니다.

 

단편 ‘알레프’에서 다중우주의 개념을 읽을 수 있었다는 말씀은 <픽션들>에서 드렸던 바 있습니다만, 민음아카데미에서 송병선교수님은 단편 알레프에 네루다에 대한 보르헤스의 비웃음이 담겨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알레프’에 등장하는 베아트리스와 카를로스 아르헨티노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 노라 란지와 네루다가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카를로스 아르헨티노의 시처럼 호화로우면서도 천하기 짝이 없는 시를 쓰는 우리 친구의 풍자입니다.”라는 말에서도 보르헤스의 심중을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우초문학에 대한 보르헤스의 관심은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는데, 특히 <알레프>의  ‘타데오 이시도로 크루스의 전기’와 <픽션들>에 실린 단편 ‘끝’에서는 아르헨티나 시인, 호세 에르난데스(José Hernández)가 1827년 발표한 가우초문학의 대표작으로 손꼽는 장시(長詩) 『마르틴 피에로』에 나오는 마르틴 피에로를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마르틴 피에로는 순수한 가우초이지만, 규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일탈하게 되지만 독립적이고 영웅적이며 희생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알레프>에 실린 또 다른 단편 ‘또 다른 죽음’에 등장하는 페드로 다미안의 죽음과 함께,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가 강제로 가우초들을 징집해 국경으로 보내 원주민들과 전쟁을 하도록 만든 정책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 합니다.

 

얼마 전에 아랍 철학자 아베로에스가 아랍어로 번역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독일어 번역본을 국내에 소개한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60768>을 읽은 탓인지 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를 아랍어로 번역하던 무렵의 아베로에스의 생활을 가상한 단편 ‘아베로에스의 탐색’은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모든 철학의 원천인 이 그리스인(아리스토텔레스)은 사람들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가르치도록 점지된 사람이었다. 아베로에스가 자신에게 부여한 목표는 마치 회교 율법학자들이 『코란』을 해석하는 것과 같이 그의 책들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 아랍인 의사는 자기 자신과 14세기나 떨어져 있는 사람의 사상에 전념했다. 그런 그의 헌신보다 더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은 역사상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117쪽)”

 

고전의 해석 혹은 번역의 어려움을 시사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그는 『시학』의 시작 부분에; 나오는 확실치 않은 두 단어 때문에 멈춰야 했다. (…) 그런데 이슬람권에서는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117쪽)” 해석 혹은 번역의 대상이 되는 글을 쓴 사람이 살던 시대, 혹은 사회에 대한 다양한 정보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으면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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