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회건축의 이해 - 신학으로 건축하다
이정구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2년 6월
평점 :
여행을 하면서 유적을 찾다보면 오래된 사찰이나 교회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천년고찰’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절집을 자주 보게 되는데, 물론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전란이나 실화로 소실되고 중건한 경우도 있지만, 조촐하면서도 오래된 건물을 만나게 되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진에서 소개하는 교회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학회때 찾았던 마치시 성당입니다. 마침 수리중이라서 제대로 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교회 전체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얼마나 멀리까지 걸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남시 구산동에 있는 구산성당은 좁은 마당 끝에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으니 얼마나 조촐한지 쉽게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절집의 경우는 초등학교 수학여행에서부터 만날 수 있고, 또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설명을 듣기 때문에 어떤 점을 주목해서 봐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교회당의 경우는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닌 듯,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61755>에서 주인공이 휴양차 노르망디 해변으로 가는 도중에 유명하다는 발베크 성당을 찾았다가 실망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발베크 성당에서 꼭 보았어야 할 유물들을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정구교수님은 <교회건축의 이해>를 통해서 우리가 쉽게 간과하기 쉬운 교회건물에 담긴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신학으로 건축하다’라는 부제가 있는 것처럼 교회건물에 담겨 있는 신학적 의미까지 정리하여 소개하고 있으니, 교회나 성당에 다니시는 분들도 미처 모르고 계셨다면 교회건물에 담겨있는 신학적 의미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며, 다니지 않는 분들도 혹시 교회나 성당을 방문하였을 때 이런 의미들을 눈여겨 살펴보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실 저자께서는 이 책이 여행자들을 위한 교회건축물 해설서가 아니며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될 건축신학서로 만들어졌으며, 나아가 건축학도와 신학도들이 교회건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지만, 텍스트를 이용하는 독자 나름대로의 이용법이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책은 교회건물의 구조에 따라서 1. 예배공간, 2. 문, 3. 통로, 4. 벽과 창, 5. 천장과 지붕, 6. 공간위계, 7. 죽은자의 공간 등으로 나누어 그 신학적 의미를 살펴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국내외 유명 무명의 교회와 성당의 사진을 적당한 공간에 곁들여 이해를 돕고 있는 점도 돋보입니다. 저 역시 가톨릭계 대학에서 공부를 하였고,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는 주말에 교회에 출석한 바 있으니 교회가 전혀 생소한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저자가 해설하는 신학적 의미와 연결하여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특히 ‘문’의 의미를 새기는 부분입니다. “문은 건물에 들어오는 자들에 대한 친절과 환영의 표지이며, 방향을 알리는 안내표지이다. (…) 선택받은 자만이 이 문을 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또 이 문을 들어오면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원받은 자로 선택받게 된다는 메시지도 전한다.(59쪽)”고 적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는 정교한 해석이라는 생각을 하는 한편 적지 않게 배타적인 해석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열린 세상을 추구하는 요즈음 닫힌 세계를 향하는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커다란 문을 활짝 열어 교회에 대하여 잘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받아들여 그들을 교화하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해석할 수는 없었을까요?
얼마 전에 교회를 알리는 십자가 표지의 네온사인을 야간에 켜지 않기로 했다는 뉴스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 한밤의 도시를 내려다보면 눈길을 끄는 모습 가운데 하나가 셀 수 없이 흩어져 있는 십자가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당의 모습을 보면 높은 첨탑에 벽돌로 지어진 바실리크 양식으로 되어 있다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고유의 건축 양식과는 다른 모습이라서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편으로는 생경하다는 느낌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외래종교인 기독교가 물에 뜬 기름처럼 여전히 우리 생활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성공회 서울 대성당의 건물은 양식으로 되어있지만, 지붕을 붉은 기와로 올려 절충을 꾀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 하겠습니다. 교회와 성당이 우리 문화에 어떻게 녹아내릴 것인가는 기독교계와 가톨릭이 풀어가야 할 숙제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