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페우스의 영역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수현 옮김 / 펄프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미국이나 일본을 여행하면서 색다르다 느끼는 점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잠시 짬이 날 때 꺼내드는 간편한 크기의 책입니다. 페이퍼백이라고 부르는 이런 종류의 책은 대체적으로 무겁지 않은 주제를 주로 다루는 편이지요. 과거 우리도 문고판이라고 하는 작은 크기의 책이 유행을 탄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주제의 책이 문고판 형식으로 출간되었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이 우리 곁을 떠나 사라지고 말았더라구요. 그 이후로 우리 책은 다시 커져서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읽는데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을 수용한 브랜드 <펄프>가 런칭되었습니다. 다루는 영역도 가벼운 장르소설을 주로 다룰 것이라 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벼운 읽을거리라는 점에서 지나치게 고급사양의 종이를 피하고 있어 책값이 비싸지 않은 것도 긍정적인 면이라 하겠습니다.

 

처음에 나온 책 가운데 일본 작가 가이도 다케루선생의 <모르페우스의 영역>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모르페우스(Morpheus)는 잠의 신인 힙노스(Hypnos, 혹은 솜누스, Somnus))의 아들로서 잠든자로 하여금 온갖 사람의 모습을 꿈꾸게 하는 능력을 가졌다고 합니다. 가이도 다케루선생은 외과와 병리학을 공부하고 임상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 얻는 영감을 바탕으로 메디컬 엔터테인먼트자를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합니다. <모르페우스의 영역> 역시 인공동면 기술을 둘러싸고 이를 필요로 하는 환자와 의사, 그리고 관료들의 팽팽한 대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특히 고가의 신의료기술인 인공동면기술에 너도나도 매달리게 되면 의료비 등 공적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을 예상한 관료들의 치밀한 저지대책에 맞서는 역할을 동면자를 돌보는 간병인 역으로 나오는 료코의 독특한 발상의 전환에 극적 반전을 이루어내는 작가의 깔끔한 솜씨에 반하게 됩니다.

 

현재의 의학기술로는 완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 먼 훗날 의학이 발전하여 치료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을 기대하는 일종의 시간여행방법으로 인간냉동법이 개발되었고 이 방법을 적용하여 스스로를 냉동시킨 사람이 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냉동법이 풀어야 할 문제는 해동(解凍)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인체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물이 냉동과정에서 결정을 이루기 때문에 이 결정이 세포 혹은 세포에 있는 미세기관을 손상시키지 않는 다는 점이 최종적으로 확인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동물실험을 통하여 검증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실험까지는 해보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인공동면을 제시한 것 같습니다. 동면이라고 하면 개구리나 뱀 같은 냉혈동물이 먹이를 구하기 어렵고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하여 잠에 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물론 곰과 같은 온혈동물도 동면을 취하기 때문에 인간이라고 해서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가 개발(?)한 인공동면 장비는 인간을 가사상태에 이르게 하여 양수와 흡사한 메듐(medium을 이르는 일본어로 다양한 성분으로 구성되는 매체를 이르는 단어로 보여 그 조성은 비밀에 붙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에 잠기도록 하고 하루에 조금씩 온도를 낮추어 4도에 이르도록 하고 동면에서 깨어날 때 역시 하루에 조금씩 온도를 높이고 상온에 이르게 되는 날 메듐을 제거한 다음 심장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소생하도록 하는 신의료기술(?)입니다.

 

5살 때 발병한 망막아세포종으로 한쪽 눈을 잃은 사사키 아스씨는 4년 뒤 다른 쪽 눈에 종양이 재발하여 눈을 잃을 상황이 되자 마침 개발된 인공동면기술을 적용하여 5년간 잠들기로 하였는데, 당시 망막아세포종 치료제가 개발 중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스씨가 인공동면술을 이용하게 되었다는 뉴스가 세인들의 관심을 끌어 암환자를 비롯한 희귀질환을 앓는 환자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지자 건강보험재정의 파탄을 우려한 후생노동성 관료들은 관련법안 만들면서 아스씨가 동면에서 깨어나는 순간 누구도 인공동면기술을 적용받을 수 없도록 제한을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게임이론의 제왕이라고 하는 MIT의 소네자키 신이치로 교수가 ‘동면 8원칙’을 제안하게 됩니다.

 

인공동면에 든 환자의 경우를 읽다보니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생각납니다. 중국 진(晉)나라 때 호남(湖南) 무릉의 한 어부가 배를 저어 복숭아꽃이 아름답게 핀 수원지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그곳의 굴속에는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하여 온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이 하도 살기 좋아 잠시 머물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더니 그 잠시 동안에 바깥세상에서는 많은 세월이 지나서 변해 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즉, 잠든 사이에 흘러간 시간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이 작품의 핵심 줄거리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일은 없는 법이지요. 스텔스라는 별명을 듣고 있는 신이치로 교수가 제안한 동면 8원칙에도 틈새가 있었고, 인공동면을 영구히 차단하려는 후생노동성 관료들의 치밀한 계획을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허점을 료코가 찾아내게 됩니다.

 

바로 인공수면 중에 있는 사람에게 적용하는 기억소실 소프트웨어인 리버스 히퍼캠퍼스(hippocampus는 해마라고 번역하고 뇌에서 기억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위입니다.)가 핵심역할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리버스 히퍼캠퍼스는 “역행성으로 과거의 기억을 지운다. 하지만 정말 그것으로 충분한가? 기억을 지우기만 하면 부자연스러운 공간이 남는다. 어떤 시기의 기억이 통째로 빠져버리면 인간은 자기 정체성을 잃는다.(157쪽)” 인간의 기억을 컴퓨터조작으로 지우고 넣을 수 있다는 발상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IT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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