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
로저 오스본 지음, 최완규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너무 흔해서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경우를 비유할 때, 흔히 물에 빠져봐야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요즈음은 간혹 우리가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잊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 오래지도 않은 과거에 치열한 투쟁을 통하여 얻어낸 감격조차도 기억하는 세대가 이제는 시대의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고 있기 때문일까요?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그렇기 때문인지 <처음 만나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통해서 살펴본 민주주의가 걸어온 길이 낯설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그리스시대 처음 등장한 민주주의의 원형으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피로 써온 민주주의의 역사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북미와 남미대륙에서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가 등장했다가 스러지는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으로부터 영국으로부터 싹튼 민주주의의 씨앗이 미국이 독립하는 과정을 통하여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고, 다시 유럽으로 되돌아가 전체주의를 무너뜨리는 과정을 뒤쫓고 있습니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이 세상 그림과 조각, 시, 희곡, 소설, 과학 및 기술적 발명품을 죄다 한자리에 모은다 해도 민주주의만큼 인류의 창의력과 혁신적 사고가 빛나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민주주의는 개인적인 삶을 허용하면서도 우리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계속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이다.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 민주주의 없는 세상은 암울하다.(16쪽)”라고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들이 공공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원형이 기원전 5세기 무렵 그리스 아테네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테네의 멸망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민주주의는 시간적 공간적 공백을 두고 2000여년이 지난 16세기 알프스고원의 그라우뷘덴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리스 시대나 알프스에서 운용되던 민주주의가 항상 논리적이고 효율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앞서 저자가 민주주의가 가장 빛나는 작품이라고 내세우는 까닭은 흡족하지 않은 점이 많은 민주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장점을 살리고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하여 끊임없이 보완하는 움직임이 이어져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는 늘 공격당하지만 여전히 민주주의는 권력을 남용하는 정부뿐 아니라 뿌리 깊은 기득권층과 부유한 기업 및 개인의 권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방어막(22쪽)”이라는 점입니다.하지만 민주주의를 오도(誤導)하는 것은 정부나 부를 쥔 쪽 만이 아니리 다양한 형태의 권력을 쥔 자들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원형이 어떻게 다져졌는지를 살펴보고 이어서 로마시대의 공화정이 성립되고 무너지는 과정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알프스 고원의 사례를 제외하고서 마케도니아가 아테네를 정복한 기원 323년부터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1776년까지의 2100년 동안은 민주주의의 공백기간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제도가 아니라 기존의 관습과 관행, 구조와 통념들이 상호작용하여 만들어낸 정치형태라는 점을 고려하여, 민주주의가 태동하기까지의 사회의 변천과정을 중세를 거쳐 근대 유럽사회의 정치형태의 격변과정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유럽제국들이 신대륙을 경영하면서 신대륙에서 민주주의가 싹터가는 과정,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통치 끝에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되는 과정도 설명하고 있습니다만, 때로는 식민지배국가의 시각이 드러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서술도 없지 않을 뿐 아니라 제3세계에서의 민주주의가 성장하는 과정이 세밀하게 다루어지지 못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모든 대륙에 존재하는 나라들에서의 민주주의가 성장해온 역사 자체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이를 상세하게 다룬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하여 잘 요약해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민주주의가 태동한 유럽사회의 변천과정의 기술에 비하면 제3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자리잡는 과정은 개략적 기술에 그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뿐만 아니라 동아시아국가에서는 중국에서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자리잡을까 하는 전망을 내놓은 것 이외에 나머지 국가들에 대한 기술이 생략되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국가들 가운데 서구식 민주주의가 가정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성장해온 과정은 반드시 포함되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민주주의하면 평화적 정권 이양, 동의에 따른 통치, 자유롭고 공명정대한 선거, 보통선거권 등의 기본요소가 떠오른다고 적었습니다만, 선거에 의한 평화적 정권이양에 있어서 적어도 여와 야가 각각 한차례씩 순조롭게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이라 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말입니다. 사실은 첫 번째 정권이양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지만, 두 번째 정권이양 과정에서 사회적 혼란이 있었던 것은 옥의 티라 하지 않을 수 없기는 합니다.

 

<처음 만나는 민주주의의 역사>는 민주주의의 역사만을 단순하게 요약하고 있다기 보다는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가 마치 공기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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