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4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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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편에서 뜻을 이해할 수 없었던 ‘꽃피는 아가씨들’이란 부제의 의미가 후편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꽃피는 아가씨들’의 후편은 전편의 끝 장면으로부터 2년을 건너 뛰어, 아마도 초여름에 접어들 무렵이라 추측되는 시점에 노르망디 해안가에 있는 발베크로 떠나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전편에서는 질베르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마음 졸이다가 어느 순간 질베르트의 이질적인 면모에서 생긴 거리가 점차 멀어지게 되는데, 아무리 연모하는 마음이 식었다고는 하지만 사랑한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습니다. 저자가 설명하는 그 이유를 기억의 일반법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회상이라는 것도 기억의 일반적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아, 기억의 일반적 법칙 자체가 습관의 보다 보편적인 법칙에 지배되고 있다. 습관은 만사를 약하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망각했던 바로 그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어떤 존재를 가장 잘 생각나게 한다. (…) 우리의 눈물이 고갈되어 버린 듯할 때도 역시 울게 하는 것,....(8쪽)” 헤어진 여인을 잊으려 애를 쓰다가도 같이 즐겨 듣던 음악이 들려오면 불현 듯 눈물이 쏟아진다거나 하는 경험을 한번쯤을 해보지 않으셨나요?

 

독특한 것은 사랑을 정리하면서 겪게 되는 마음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다른 사랑을 만나거나 아니면 술, 운동, 도박?과 같은 전혀 다른 힘을 빌게 되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특별한 무엇없이 마음고생을 다한 다음에 훌쩍 여행을 떠나면서 또 다른 사랑을 구하는 모습은 당시에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낯설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꽃피는 아가씨들’의 후편을 통하여 주인공이 정신적으로 불안한 측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읽는 내내 버릴 수 없었습니다. 발베크로 떠날 무렵 갑작스런 사정으로 어머니가 동행하지 못하게 되자 불안해진다거나, 발베크에 체류하면서 사귀게 된 생 루에게 할머니의 관심이 옮겨가는 듯하자 투정을 부리는 대목이 나오게 됩니다. “할머니가 내 방을 나가 버리자마자, 파리에서 집을 떠나는 순간에 괴로워했듯이, 나는 괴로워하기 시작했다.(46쪽)”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이야기는 역으로 몸이 약해지면 정신도 약해진다는 이야기와 통한다고 보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나 할머니의 애정을 붙들려는 주인공의 정신상태가 집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발베크로 향하는 노정에서 그리고 발베크에서 체류하는 동안에 만나는 젊은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려 기를 쓰는 모습, 그리고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언제 그랬나 싶게 또 다른 여성에게 관심을 옮기는 주인공의 행동은 집착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 아닐 수 없어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여성을 보는 주인공의 독특한 능력입니다. 스치듯 지나친 여성도 마치 대면한 듯 그려내는 능력은 대단하다 싶습니다. “빌파리지 부인의 마차가 빨리 달린다. 이쪽으로 오는 계집애의 얼굴을 볼 틈이 있을까 말까 하게. 그렇지만-인간의 아름다움은 사물의 그것과는 달리, 의식과 의지를 가진 독특한 생물의 아름다움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에- 계집애의 개성....(103쪽)” 이하로 한 문장이지만 장문으로 글로 그녀에 대한 느낌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인에 대한 주인공의 관심은 스쳐지난 여인을 만나기 위하여 마차를 세우고 뒤쫓는 일이 한두번이 아닌 듯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제하는 여성이 드물었다는 점은 주인공의 병적인 관심의 소산에 불과한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꽃피는 아가씨들’이라는 부제는 발베크에서 만난 프티 부르주아 계층의 젊은 여성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산책을 하는 가운데 조우했던 이 여성들을 다시 만나지 못해 애태우다가, 언젠가 스완이 말했던 화가 엘스티르의 화실을 찾아가면서 관계를 맺게 되는 실마리를 풀어내게 됩니다. 저자는 등장인물들을 곳곳에서 엮어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엘스티르는 한때 베르뒤렝네 사교모임에서 비슈라는 별명으로 부르던 사람이고 무명시절의 오데트, 즉 크레시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새로운 관계를 내비치고 있어 다음에 어떤 사건으로 이어지게 될지 흥미롭습니다.

 

기억에 관한 저자의 독특한 논리도 제 시선을 끌었습니다. “내가 가장 나중에 본 얼굴이, 어째서 나에게 상기되는 유일한 얼굴이 아니었나 하면, 어떤 사람에 관한 우리의 회상에서, 지성이, 우리의 일상의 관심사와 가까운 실리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을 젖혀 버리기 때문이다. (…) 나의 첫인상은 모조리 멀리 멀리 가 버려, 나날이 그 모습이 변형되어 가는데, 그것에 대항하는 힘을 기억 속에서 구할 수가 없었다.(424쪽)”

 

요즈음으로 치면 논술고사를 치루는 요령이라고 할 조언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와 똑 같은 문제가 나오면, (…) 흥분해 보리지 않고, 먼저 다른 종이에 내 초안을 차근차근 적어 놓지, 첫줄에 문제의 요지, 주제의 서술, 다음에 전개해 나갈 본문의 개요, 끝으로 감상, 문제, 결론. 이렇게 전체의 개요을 적어 두면 논지의 방향을 알게 되지.(375쪽)” 논술을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좋은 조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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