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 과학이라 불리는 비과학의 함정
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얼마전 블로그 친구분께서 “교과서진화론 개정 추진위원회”의 압력으로 우리나라의 일부 고등학교 과학교과서에서 시조새 부분이 삭제된다는 뉴스와 함께 이와 같은 소식이 저명한 과학잡지 네이처에까지 “South Korea surrenders to creationist demands(한국이 창조주의자의 요구에 굴복하였다)”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창피하다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490274). 창조론에서 발전한 지적설계론을 교과과정에 넣기 위하여 부단히도 노력해온 미국사회에서도 진화론과 견줄 정도의 위치마저도 아직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지적설계론자들이 입김이 우리사회에서 진화론의 증거가 되는 사진을 교과서에서 삭제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과학이 발전하게 되면서 창조론의 입지는 축소되기 시작하였는데, 분자유전학적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화론을 지지하는 증거들이 그 부피를 더하면서 대안으로 내세웠던 창조과학마저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자 지적설계론으로 변화를 모색하였지만, 이 역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하여 회의주의자들은 비과학의 영역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학이 우리네 삶과 긴밀한 관련을 맺게 되면서 과학으로 포장한 비과학이 세인들의 눈과 귀를 가리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하여 태동한 회의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표적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의 <과학의 변경지대;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02415>를 비롯하여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9606250> 등을 읽으면서 회의주의적 사고를 키워야 할 필요에 공감해오던 터였습니다.

 

‘과학이라 불리는 비과학의 함정’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는 제목이 주는 묘한 뉘앙스에 끌려 읽게 되었습니다만, 저자인 마시모 피글리우치교수가 회의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대한 다양한 설명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이한 것은 회의주의자들 가운데는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은 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기왕에 나온 회의주의관련 서적들의 번역에서 사용한 용어와 다소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과학, 변경지대의 과학 등의 용어는 사이비과학과 거의 과학이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왕에 소개된 회의주의적 관점의 서적들은 비과학 혹은 변경지대의 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이론의 논리적 배경을 소개하고 문제점을 비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에서는 비과학 혹은 변경지대의 과학의 사례를 먼저 소개하고 그와 같은 이론들이 우리 사회에서 발을 붙이게 되는 이유를 살피고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의 역할이나, 대중지식인들이 목적을 가지고 이와 같은 이론을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점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왕의 회의주의관련 서적에서 이미 볼 수 있었던 사례들을 다시 읽게 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이클 셔머와 같은 경우는 과학, 변경지대의 과학 그리고 비과학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저자의 경우는 자신만의 기준을 제시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자는 제가 최근에 읽은 칼 포퍼교수가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제시하였던 반증가능성[자연학과 철학의 경계를 구분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을 담은

<추측과 논박2;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45385>에서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대한 포퍼의 개념을 읽을 수 있습니다]은 과학의 본질이 복잡다단해진 현실에서 공통적으로 적용하기에는 지나치게 단순하기 때문에 학문적 가치가 없다는 식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판단기준을 볼 수 없었던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저자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50611>를 인용하여 비판하면서 역사의 일반이론이 적절한 분석으로 검증될 수 있다는 다이아몬드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역사과학을 통한 검증가능한 예측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은 칼 포퍼교수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26263>에서 그 논리적 배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철학을 전공한 저자의 특성일수도 있겠습니다만,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여 해설을 하고 있지만, 나름대로의 논리를 충분히 개진하고 있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미국 펜실베니아 도버시의 법정에서 맞붙은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자들 사이의 대회전에 대하여 양측을 대표하는 입장을 각각 소개하고 결국은 정경분리를 규정한 미국수정헌법을 지켜 지적설계론자의 패배를 결정한 존스판사의 결정문을 인용하는 수준에서 글을 마무리한 점이라거나, 많은 회의주의자들이 지구온난화를 우려하는 주장이 과장되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저자는 지구온난화를 주장하는 편에 가까운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마무리 부분에 적은 특정영역에서 누가 전문가인지를 구별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정 영역에서 누군가를 전문가로 볼 수 있으려면 다음 두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 그 사람은 비전문가보다 해당 영역에 관해 옳은 믿음을 더 많이(그리고 틀린 믿음을 더 적게) 지닌다. (2) 그 사람은 해당 영역에서 ‘상당한 양의 진리’를 알고 있다.(436쪽)” 일견해서는 똑 떨어지는 기준같아 보입니다만, 참으로 애매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이 자신의 것이 아닌 앨빈 골드먼이 제안하는 전문가 구분법 다섯 가지 역시 일반인이 이해하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책읽기에 몰입이 어려웠던 점인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산만하다 싶은 서술과 특히 본문 중에 작은 글씨로 적어 넣고 있는 주석이 오히려 책읽는 흐름을 방해한 결정적인 요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본문의 주석이 그렇게 중요하였다면 본문에 녹여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