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시리즈로 된 책의 리뷰를 쓰는 일은 참 난감하다. 전체를 읽고 하나로 적어야 하나 아니면 한편씩 적어야 하나 망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묶어서 때로는 각각 적어보기도 합니다만,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각각 적어보기로 하겠습니다. 특히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쿤데라는 “내 이력서 속 자아로부터 그 어떤 인물도 도출되지 않았다. 내 소설의 인물들은 실현되지 않은 나 자신의 가능성들이다.” 라고 말해 자신의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스토리가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창작임을 밝히고 있습니다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장면 혹은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에 프루스트가 오감을 통해서 느낀 것들을 빠트리지 않고 적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그의 기억을 통해서 그려지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정밀하고 정확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번 이야기에서는 화자가 주인공으로 돌아와있습니다. 주인공이 글쓰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고, 가능성을 따져보는 과정이나, 처음에 호의적이지 않던 부모님이 긍정적으로 선회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핵심은 지난 이야기의 말미에 맛을 보였던 스완과 오데트의 딸 질베르트에 대한 주인공의 사랑이 부침을 겪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당시 파리 사교계의 일반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사이에 질베르트에 대한 자신의 연모하는 마음을 엮어 넣으면서 스완가의 관심을 받게 된 점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질베르트에게 향하는 연모의 정을 스완가의 사교모임에 초대되면서 자연스럽게 키워나가는 과정, 그리고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질베르트의 의외의 모습으로 야기되는 작은 갈등이 확대되면서 절교를 결심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는데, 지난 이야기에서 스완씨가 오데트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극심한 질투와 고통을 겪은 끝에 결혼에 이르게 되는 것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것은 오데트의 감춰진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스완씨가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귀띔이 나오고 있는데, 다음 이야기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집니다. 즉 주인공은 스완씨처럼 맹목적으로 빠져드는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제어할 줄 아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주인공이 천식이라는 지병을 앓고 있는 까닭에 스스로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성격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주인공이 질베르트의 관심을 얻게 되는 지난한 과정을 참을성 있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내가 그녀의 양친에게 얼마나 탄복하고 있는지 이야기하자, 질베르트는 (…) 무언가 숨기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톡 쏘아붙이고 말았다. ‘우리 부모님은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걸!’하고 나서, 내 곁을 물의 요정처럼 스르르 지나치며 까르르 웃어 댔다.(93쪽)” 이렇게 시작한 관계가 그녀의 집에서 열리는 다과시간에 초대받는 관계로 그리고 오데트와 개인적인 만남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녀의 육체에 끌리는 나 자신을 느껴 그녀에게 말했다. ‘자아, 빼앗지 못하게 해봐, 누가 기운 센지 내기하자구.’ 그녀는 편지를 등쪽으로 감추었다. 나는 그녀의 목 뒤로 손을 돌려...(97쪽)”에서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이루어지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남녀관계는 예상치 않은 복병을 만날 수 있고, 이런 상황을 넘어야 해피엔딩이 되는 것인데, 눈에 콩깍지가 쓰였을 때는 대범하게 넘어가는 상황이 깨름칙한 무엇이 느껴지기 시작하면 되짚어보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할아버지의 기일에 오페라의 발췌를 들으러 나서는 그녀의 모습에서 주인공은 놀라게 되는데, 평소 주인공의 마음에 드는 것, 양친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상관없다고 말하면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시침을 뚝 따고 밀어붙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158쪽, 170쪽) 질베르트의 이런 모습에 대하여 저자는 “질베르트는 확실히 외딸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두 질베르트가 있었다. 그 부모의 두 성질은 단지 그녀의 몸 안에 섞여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두 성질은 서로 다퉈 그녀를 빼앗고 있었다.(200쪽)” 현대 정신의학에서 해리성장애로 정리되는 성격의 단면을 그리고 있는 것이라 보입니다.

 

이날 사건은 주인공의 마음 한 구석에 작은 구름을 남겨두었던 것 같습니다. “그녀의 할아버지 기일에 일어난 사건 이래 나는 늘 마음속으로 물었다. 질베르트의 성격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딴판이 아닐까, 남이 하는 것에 대한 무관심, 그 슬기로움, 그 침착, 끊임없는 그 온순함은 오히려 그녀가 자존심에서 억지로 보이지 않고 있는 매우 격렬한 욕망을 숨기고 있어, 그 욕망은 어쩌다가 방해받았을 때 외에는 돌연한 항거로 드러나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205쪽)” 이런 의혹이 점차 확대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생기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떻든 남녀의 헤어짐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런 절절한 느낌을 손에 잡힐 듯이 그리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떨림을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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