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 스완네 집 쪽으로 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창석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1998년 2월
평점 :
절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2권은 스완네집 쪽으로의 후반부에 해당합니다. 1권은 전체 7편을 통해서 저자가 그려나갈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한 바탕이 되는 것들을 설명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1권을 읽으면서 스완씨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싶어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왜 ‘스완네집 쪽으로’라는 부제를 달았나 싶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825113). 하지만 2권을 읽고서야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스완네집 쪽으로’라는 부제를 단 제 1편은 ‘1부 콩브레 I과 II, 2부 스완의 사랑, 3부 고장의 이름-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1권에 ‘1부 콩브레 I과 II’를 2권에는 ‘2부 스완의 사랑, 3부 고장의 이름-이름’을 담고 있습니다.

 

2부 스완의 사랑에서는 당시 파리의 사교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사교계 사람들은 그리고 보다 영향력이 있는 그룹에 끼어들기 위하여 벼라별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고 사교계 모임에 초대받지 못해서 요즘 말로 왕따라도 당하게 되면 치욕이라 생각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교계 모임을 통하여 신분 상승을 노리는 남녀들도 적지 않았고 이들의 유혹에 넘어갔다가 버림받은 순진한 사람들은 비참하게 죽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모양입니다. <춘희>도 그런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스완의 사랑’에서는 신분상승을 노리는 여자(읽어가다 보면 남자관계가 매우 복잡한 것으로 밝혀지고, 결국은 스완씨와 결혼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오데트가 남자를 홀리는 현란한 기술(?)을 엿볼 수 있고, 스완이 빠져 들어가는 과정을 바로 스완의 곁에서 들여다보듯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부에서는 내가 화자가 되어 콩브레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기록에 남기려는 듯 꼼꼼하게 적어가고 있습니다만, 2부에서는 파리 사교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역시 눈으로 보듯 그리고 있습니다.

 

스완씨가 오데트에 집착하는 모습은 요즈음의 정신의학 수준으로 판단해보면 편집증의 초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데트가 어떤 사람인지 스완씨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스완씨만 모르고 있다가 누군가 은밀하게 이런 사실을 전했지만,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데트가 전략상 스완씨를 외면하는 척하면서도 치밀하게 밀고 당기는대로 스완씨가 끌려다니다가 결국은 결혼에까지 이르게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는 일부 사교계에서는 스완씨를 한 수 접어 보게 된다는 설명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에 스완씨의 사연을 먼저 절절하게 적어나가고 있는 것은 스완씨의 딸 질베르트에게 마음이 쏠리게 된 까닭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변화는 주인공의 정신세계가 성장하는 과정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부에서 저자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목말라 하는 모습을 여러번 그리고 있습니다. 어릴 적 콩브레에서 지낼 때 스완씨가 저녁 늦게까지 머물며 부모님과 어울리는 까닭에 혼자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주인공은 어머니의 밤키스를 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모습을 보면, 오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합니다만, 어느덧 나이가 들어 사랑의 대상이 어머니에서 질베르트라는 젊은 여성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1권에서는 미각과 후각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마들렌이라는 매개물을 이용하여 설명하였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2권에서는 청각이 기억에 미치는 영향을 음악이라는 매개물을 이용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야 하겠습니다. 저자는 스완이 어떤 야회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연주된 음악을 들으면서 느꼈던 감동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연하고, 탄력있고, 치밀하고 통일적인 바이올린의 가는 줄 밑에서 월광에 홀려 반음계로 떨어진 물결의 연보라 소요처럼, 수많은 꼴이 꼬리를 문, 잔잔하면서도 가볍게 서로 부딪치는 피아노의 가락이, 물결의 찰랑거림이 되어 솟아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보았을 때, 그건 이미 커다란 기쁨이 되었다.(37쪽)”

 

스완은 오데트를 처음 만나게 되는 베르뒤랭 부인의 파티에서 이 곡을 다시 듣게 되면서 이 곡이 콩브레에서 이미 설명한 뱅퇴유가 작곡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의 안단테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41쪽). 이 음악이 오데트에 대한 기억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을 읽으면서, 제 경우와 아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대학신입생이었던 시절 동아리에서 만난 여자친구를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언젠가 다방에서 만났을 때 마침 폴 모리아 악단이 연주하는 “Song for Anna”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친구는 이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부터는 “Song for Anna”를 듣게 되면 반사적으로 그 친구가 머리에 떠오르게 됩니다. 음악이 기억을 되살려내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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