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의 어머니
김용택 지음, 황헌만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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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와 함께하는 글쓰기교실에서 김용택시인님을 처음 만나 시인님의 글쓰기에 관한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814013). 시인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시를 시작하셨다는 임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원에서 만 4년을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남원을 가려면 임실을 지나기 마련인데 가끔은 이곳 어딘가에 김시인께서 사신다더라는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딱히나 그런 인연 때문만은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글쓰기교실에서 시인께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놓으시는 이야기들이나 <김용택의 어머니>에 담으신 이야기들은 마치 제가 적어놓은 저의 어릴 적 이야기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군산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옥구군 대야벌판 가운데 있는 광산마을에서 살았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농번기나 겨울방학이 되면 할머니댁이나 외갓댁에 맡겨져야만 했습니다. 추수할 때 새참을 내가시는 할머니를 따라나서 이삭을 줍거나 우렁이를 잡아 바가지에 담아오면 할머니께서 된장국에 넣어 구수하게 끓여주시곤 했습니다. 초여름에는 매뚜기를 잡으러 벌판을 쏘다니고 벼이삭이 팰 무렵에는 벼멸구 애벌레를 잡아서 벼이삭을 훑어낸 끝에 묶어서 송사리를 낚는 재미를 즐기기도 하고 벌판은 그대로 자연을 배우는 교과서였습니다.

 

선친께서 교편을 잡고 계실 때에는 시인께서 말씀하신대로 홍루몽, 열국지, 헤밍웨이 등 전집류를 사들이시곤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부터 그런 책들을 읽고, 중학교 2학년 무렵 일기쓰기를 시작해서 대학다닐 무렵까지 꽤나 오랫동안 이었는데도 시가 되지 않더라는 제 경험을 비춰보면 역시 글쓰기는 타고나는 비중이 꽤나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시인께서는 <김용택의 어머니>를 쓰시게 된 것이 임실에 자주 놀러오시던 사진작가 황헌만선생이 어느날 오랫동안 자당님을 앵글에 담아 보았다며 내놓은 사진들이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언듯 보면 우리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애로운 시골어머니 모습입니다만, 사진들을 조금만 자세히 뜯어보아도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자당께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찍은 스냅사진도 있지만, 앵글을 의식하시고 포즈를 취하신 듯한 사진들도 적지 않습니다. 역시 전문가가 사진에 담은 분위기에 꼭 맞추어 풀어낸 김작가님의 글솜씨가 어우러져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보입니다. 사계절을 따라 사진을 찍었기 때문인지 글도 계절 따라 달라지는 시골풍경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인께서도 자당께서 하시는 말씀을 고대로 받아 적으면 시가 되고 글이 되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책을 읽다보면 ‘그래 그때는 꼭 그랬어!’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자당께서는 밥을 잘하는 도사였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밥이 많아 물의 양을 잘 조절해야 할뿐더러 불을 어떻게 때느냐에 따라 그날의 밥이 잘될지 못될지 판가름 난다. 그러니 불을 때는 데 혼신의 힘과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131쪽)”고 적었습니다. 김시인님께 숙제로 제출했다가 뽑혀서 격려와 보완할 점을 챙겨주셨던 글(당신의 기억이 쇠하셨나 걱정입니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805886)에서는 귀띰만 했습니다만,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어머님께서 아침을 지으시면서 깨우면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솔가지, 볏짚, 장작, 나락껍질 등등 다양한 연료를 사용해서 가마솥밥을 짓곤 했습니다. 저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보면 밥물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력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하는 것하고 언제 불때기를 중단할 것인가 그리고 솥을 찬물수건으로 닦아주면서 뜸을 들이고 나서 다시 은근하게 불을 지펴 마무리를 하는 것이 밥을 고슬고슬하게 짓는 비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밥을 태워본 적은 없었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감나무가 잘 부러진다는 것은 알았습니다만, 감을 딸 때 가지가 부러지면 다음해 감이 많이 열게 된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남원에서 어르신들의 치매치료를 잠시 맡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게 오셨던 할아버지께서 제게 주시려고 감을 따라 감나무에 오르셨다가 떨어지셨다는 말씀을 듣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감나무가 단단하지만 탄력이 없어 잘 부러지는 것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완벽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나무가 단단한 장점도 잘 부러지는 단점에 가려지니 말입니다.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면서 김작가께서 무생채 이야기를 여러 번 풀어놓으셨는데, 막 무친 무생채를 좋아하신 듯 한 김작가님과는 달리 저는 무생채가 잘 익어 양념이 무에 완전히 배어들면 뜨거운 쌀밥에 익은 무생채를 듬뿍 올리고 쓱쓱 비비면 다른 반찬 없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던 것입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학교에서 도시락검사를 할 정도로 잡곡혼식이 강제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머님께서는 밥에 잡곡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일제치하를 거치고 한국동란을 건너오면서 모질게 고생하셨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아 싫으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 어디를 펼치고 읽어도 책을 읽는 독자가 제 연배 근처라면 누구라도 낯익은 풍경이다 싶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 대한 추억을 풀어내도 바로 리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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