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이란 무엇인가 - 융합의 과거에서 미래를 성찰한다 미래 융합 아카데미 1
홍성욱 엮음 / 사이언스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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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에서 조용하게 등장했던 융합이란 용어가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는 것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의 안철수 원장의 정치적 행보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서울대학교를 비롯하여 포항공대, 호서대학에서 융합대학원을 설치한데 이어 성균관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가 의학부문에서도 융합대학원을 설치하였다고 합니다.

 

다음 국어사전은 “① 서로 섞이거나 조화되어 하나로 합쳐지다 ② 둘 이상의 사물을 서로 섞거나 조화시켜 하나로 합함.”이라고 융합(融合)을 풀이하고 있습니다. 학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융합의 의미를 지식의 융합, 그 중에서도 학문의 융합을 통해서 시너지효과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학문의 융합이란 “다른 종류의 학제에 기반한 학문이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이라고 박상욱교수님은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몇 년 전 에드워드 윌슨교수의 화제작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를 최재천교수님이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하면서 제시한 ‘통섭(consilience)’이란 조어가 한동안 회자되었던 기억이 납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4895225). 인간의 사회적 행동양식도 생물학적, 유전적 진화과정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는 “사회생물학”을 처음 제창한 에드워드 윌슨이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으로 서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을 <통섭>에 담은 것이었습니다. 윌슨교수님이 제창한 통섭이란 학문적 개념을 우려의 시각으로 바라본 분들도 있었습니다. 윌슨교수의 하버드대학교 동료인 존 벡위드교수는 사회생물학이 한때 인류공존에 위협이 되었던 우생학의 망령을 되살릴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과학과 사회운동 사이에서; http://blog.joinsmsn.com/yang412/11205257>를 통하여 설파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박상욱교수님은 통섭이 학문간의 통합을 통하여 방법론을 공유하는 정도의 개념이라 한다면 융합은 서로 다른 두 학문을 녹여 전혀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인의 관심을 끄는 정도에 머물렀던 통섭과는 달리 학문의 영역을 변화시키고 있는 융합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홍성욱교수님을 비롯한 여섯 분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융합이란 무엇인가>에서 화제가 되고있는 ‘융합’이란 개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학문을 하나로 녹여내기 위해서는 각각의 분야에서 상당한 학문적 성과를 이루어야 가능한 일이겠습니다. 따라서 두 분야를 전공한 사람들을 모아서 하나의 학제에 묶어두는 물리적 융합으로는 기대했던 성과를 낼 수 없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당연히 화학적 융합이 일어나야 하겠는데, 우리 옛말에도 있는 ‘팔방미인’이라는 말처럼 깊이는 없으면서 두루 걸쳐놓은 학문적 관심만으로는 해당 학문의 융합을 이룰 임계점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이 또 다른 한계라 하겠습니다.

 

<융합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융합학문의 이론적 설명을 서두로 하여 학제가 융합이 성공한 분야를 예시하고 있으며, 미래에 융합학문이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될 것인가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생명과학분야의 독자들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박형욱교수님이 맡으신 노화와 장수를 주제로 한 글을 읽은 느낌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칼로리섭취와 장수와의 관계는 노화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 오랫동안 주목해오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오래 전에 제가 미국 텍사스에 있는 샌안토니오에 갔을 때 마우스를 이용하여 칼로리섭취와 수명을 연구하는 실험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양껏 먹이는 마우스에 비하여 사료의 양을 줄여서 먹이는 마우스가 더 오래 산다는 실험결과에 고무되어 귀국한 다음 소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는 우리네 속담을 핑계로 내세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박형욱교수님께서 소개하시는 글에서 칼로리와 노화에 관한 선구적 연구에 처음 착안했던 맥케이의 초기 실험에서 칼로리를 제한한 동물들이 비교적 젊고 건강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구조적 기능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는 지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칼로리를 제한한 동물이 크기와 몸무게가 떨어졌을 뿐 아니라 뼈에 칼슘이 부족해서 작은 충격에도 골절이 일어나기도 했고, 생식기능도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풍부한 영양을 섭취하게 된 우리 아이들이 부모세대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좋아졌다는 점을 금새 깨닫게 됩니다. 칼로리 제한이 장수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분명 장점이 있다고 보지만, 건강 전체를 놓고 본다면 손익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멕케이가 실험모델을 구축하는 과정에서는 실험동물분야의 수준도 지금보다 낮아서 순수혈통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이기 때문에 실험성적의 일관성 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멕케이의 모델동물을 이용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노화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었던 것은 영양학과 축산학 등의 결합이 발단이 되어 생명과학 및 의학 영역으로 확대되어 장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영역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전진권교수님과 장대익교수님께서 함께 쓰신 합성생물학 분야에서 융합의 성공사례는 놀랍기도 하고, 최근에 관심을 두고 읽었던 우주의 생성과 진화에 관한 책에서 얻었던 궁금증을 푸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시계공; http://blog.joinsmsn.com/yang412/12604835>에서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이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DNA라고 하는 화학적 구조에 그 유전정보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의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http://blog.joinsmsn.com/yang412/12597810>에서는 원시지구가 안정적 상태에 이르렀을 때 원소들이 서로 결합하여 DNA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DNA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실험실에서 구현하게 된 것도 유전학과 공학이 겹합한 합성생물학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공적으로 만든 유전체를 가진 최초의 합성 생명체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연구성과가 2010년 5월호 <사이언스>에 실렸다는 놀라운 소식도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일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의 발전과정에서 인류의 안녕을 위협하는 위기상황이 발생하고 이런 상황은 인간의 힘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우연 혹은 자연의 힘으로 겨우 해결된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읽어온 공상과학소설을 통해서 학습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인공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생명체가 탄생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마음 한 구석에 남게 된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밖에 일부 필진이 제기하고 있는 사회적 의미가 조금 더 강한 융합의 논점은 논외로 하기로 하고, 학문 혹은 학제의 융합은 의학계 혹은 의료계에서도 많은 관심을 두어야할 것이라는 점을 짚어보려 합니다.

 

의학과 윤리학이 만나는 의료윤리분야만 하더라도 존엄사를 비롯하여 장기이식 등 다양한 이슈를 정리하는데 있어 인문학적 깊이를 갖춘 의학자들이 심도있는 연구를 통하여 그 의미를 정립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이를 실행하는데 있어 현행 법질서체계와 충돌하는 부분에 대하여는 법학의 담을 허물어야 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의학교육에 인문학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기초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의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의학대학원제도가 도입되기도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물리적 융합만으로는 기획했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정책이 의학대학원제도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외국에서 이미 운용하고 있는 제도이기도 할 뿐 아니라 도입 당시에 부담이 되고 있었던 대입제도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예측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도를 도입하여 운용한 결과는 의학과 관련된 자연과학분야의 토대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불렀을 뿐만 아니라 기초의학 활성화 등 기대했던 효과는 전혀없고 오히려 개업의사만을 양산하는 부작용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의학대학원제도의 도입을 앞두고 의료계가 제기했던 우려가 그대로 현실화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사회는 충격적 변화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의학교육에 관한 제도를 단숨에 바꾸려했던 시도 역시 우리사회가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고 하겠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의학계에서 불고 있는 융합의 바람이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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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2012-05-0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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