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2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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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바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교수가 일간신문으로부터 의뢰받은 ‘희랍인 조르바’의 독후감을 의뢰받았는데, “책을 읽다가 느닷없이 다가온 '자유'라는 조르바식 질문에 견디다 못해”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는 것입니다. 학교 측으로부터 사표가 수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조르바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에 막 들어간 1970년대입니다. 음악다방이 유행을 타던 시절이라서 학교근처 음악다방에 가면 듣고 싶은 음악을 적어 DJ에게 보내면 골라서(?) 틀어주곤 했습니다. 밤늦게 들르게 되면 DJ Box에 쥬스 한잔 넣어주곤 하던 친구덕분에 그 다방에 가면 듣고싶은 음악을 언제나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희랍인 조르바 OST를 만나 제가 신청하던 음악목록의 윗자리를 차지하곤 했습니다.

 

<조르바의 춤; Zorba's dance>에서 부즈키(Bouzouki)라고 하는 그리스의 전통 악기가 이끌어가는 선율은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해서 점점 빨라지면서 절정을 향해 치닫다가 제풀에 지쳐 풀썩 쓰러지는 듯한 마무리는 한창 피가 끓던 시절과 잘 어울렸던 것 같습니다. 이 곡은 그리스 작곡가 미키스 데오도라키스의 작품인데, 그의 또다른 작품으로 멜리나 메르쿠리가 주연한 영화 <죽어도 좋아; Phaedra>와 함께 19070년대 학창시절을 같이 했던 음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TV 명화극장에서 만난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입니다. 미할리스 카코지아니스감독의 1964년 작품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앤소니 퀸이 조르바 역을 맡고 앨런 베이츠가 버질 역을, 이렌느 파파스가 미망인 역을 그리고 릴라 케드로바가 마담 오스탕스 역을 맡았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보았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만, 조르바가 춤을 추는 장면만 어렴풋하게 남아 있습니다. 음악은 여전히 기억에 남아 있구요. 그리고 보면 청각기억이 시각기억보다 훨씬 더 오래 가는 모양입니다. 지난 3월 26일 EBS 명화극장에서 다시 방영되었다고 해서 찾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났습니다. 음악으로 만난 이래 무려 40년 만입니다. 학창시절 읽으려다가 결국은 끝내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아내의 부탁으로 사게 되어 같이 읽게 되었습니다. 단숨에 읽어냈기 때문에 번역을 하신 이윤기교수님이 행간에 심은 원작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조만간 다시 읽을 예정입니다.

 

<희랍인 조르바>를 이해하려면 그리스의 근대역사를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1453년부터 오트만제국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그리스는 무려 400년에 가까운 세월을 제국의 탄압에 시달리게 되는데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이후 유럽에 몰아친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독립항쟁이 시작되어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1830년 3월 독립왕국을 수립하게 됩니다. 하지만 독립 이후에도 이들 국가의 내정간섭이 심했고, 심지어 1878년에는 오토만제국의 지배로 남아있던 사이프러스가 영국에 넘어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소설 곳곳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갈탄광산을 운영하기 위하여 크레타 섬으로 가던 중에 조르바를 만나게 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채광과 벌목을 하게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적인 삶에 지친 나는 카프카스에서 탄압받고 있는 동포를 구하기 위해서 떠나는 친구의 동행요구를 거절한 것이 늘 짐으로 남아있습니다. 결국은 “책벌레 족속들과는 거리가 먼 노동자, 농부 같은 단순한 사람들과 새 생활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15쪽)”는 결심을 실행에 옮겨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의 운영권을 빌리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크레타로 떠나는 배를 기다리다가 조르바를 만나게 된 것은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여행하시오? 어디로? 하느님의 섭리만 믿고 가시오?”라고 묻고는 “날 데려가시겠소?”라는 조르바의 요구에 “왜요?”라고 답한 나에게 “왜요! 왜요! …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됩니까? 자 날 데려가쇼. … (17쪽)”라고 욱박지르는 조르바가 마음에 들어 동행하게 되고, 크레타섬에서는 탄광의 현장관리에서부터 인허가와 관련된 것, 자재구매 등등 모든 일을 조르바에 의지하게 되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의 만남은 필연이라는 설명이외에 이해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이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22쪽)”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르바는 내게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것, (…) 즉 자유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희랍인 조르바>에서 저는 일제강점시기에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읽었습니다. 만주로 독립운동을 떠나는 행동파와 이도저도 못하고 눌러앉아 현실에 안주하는 나약한 지식인. 떠나지도 못하면서 자유로운 삶을 무한 동경하는... 그리고 압제에 눌려 살다보니 왜곡되는 기층국민들의 일상생활.. 그곳에는 정신이 타락하고 폭력성이 슬며시 자리 잡게 되는 것입니다. 조르바는 그것을 내 안에 들어있는 또 다른 나, 악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악마를 죽이는 일, 그것이 바로 자유로운 삶을 얻는 길이고, 나는 붓다의 가르침에서 그것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보기에 붓다의 철학으로 살아가는 공동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는 나는 목표가 뚜렷하지 않은 이상주의자인 것 같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암흑세계이고 환상적이고 유동적이며 꿈이 짜낸 빛의 천으로 빛나는 미래의 세계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 내가 거침없이 살아온 조르바식 자유에 매료되는 것이 당연할지 모릅니다.

 

리뷰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작가가 풀어놓은 크레타섬의 풍광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언덕 위로 올라 사위를 내려다보았다. 화강암과 단단한 석회암의 풍경이 펼쳐졌다. 짙은 콩나무, 올리브나무, 무화과와 포도넝쿨도 시야에 들어왔다. 어두운 계곡으로는 오렌지나무 숲, 레몬나무와 모과나무가 보였으며, 해변 가까이로는 채소밭도 보였다. 바다가 펼쳐지는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달려온 듯한 파도가 크레타 섬의 해안을 물어뜯고 있었다. 가까이 있는 모래섬들은 막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에 장밋빛으로 반짝거렸다.(49쪽)”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곳 그리스입니다만 정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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