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침 一針 -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주말 열렸던 예스24 파워문화블로거 네트워크데이에 참석했을 때 받은 책입니다.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교수님께서 쓰신 책인데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만큼 살아가면서 경구로 삼을만한 글모음이겠다 싶었습니다.

 

어수선한 세상에 서로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말만 골라서 주고받다 보면 싸움이 왜 시작되었던지 조차 잊고 열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이런 상황을 정교수님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혀는 칼이 되고, 말은 독침이 되어 여기저기서 날아와 박힌다. 정신도 덩달아 몽롱하다.” 이럴 때는? 그렇습니다. 바로 “이럴 때 정문일침(頂門一針)이 필요하다. 그 한 바늘 끝에 막혔던 혈도가 풀린다. 달아났던 마음이 화들짝 돌아온다.(4쪽)”고 답을 주셨습니다.

 

상황파악이 안되어 말이 헷갈리는 사람을 보면 넌지시 한 마디를 던져 상황을 깨닫게 해주는 경우를 일컬어 ‘일침(一針)을 놓는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말이 길어지면 자칫 꼬이기 십상이라 오히려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어 전하고자 하는 뜻을 함축한 짧은 말이 좋을 수 있습니다. 저자는 그런 이유로 4자성어 형태로 압축한 일침을 만들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읽으면 따끔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나타내셨는데, 막상 읽어보면 그야말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싶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한문교육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사이 선조의 한문학의 전통을 잇는 분들이 점차 줄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자취를 접할 기회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이 즈음에 정교수님의 일침(一針)은 우리 사회에 따끔한 자극이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오랜 한문학 연구를 통하여 마음에 품어둔 글들 가운데 가려 뽑은 100개의 글을 25개씩 묶어 1부 <마음의 표정> 2부 <공부의 칼끝> 3부 <진창의 탄식> 4부 <통치의 묘방>이라는 이름으로 나누었습니다. 스스로의 마음에 이는 생각을 다스려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새겨야 할 선인들의 지혜를 적절하게 배치했다고 보입니다.

 

그 첫 번째 글 <일기일회(一期一會)>로 하신 것은 좋은 기회는 평생 한번 온다고 새길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매순간은 최초의 순간이기 때문에 모든 만남은 첫 만남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여야 하겠다는 뜻을 담아 첫 번째 글로 정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이어지는 <심한신왕(心閒神旺)>편에서는 마음이 한가로우면 정신작용이 활발해져서 건강한 생각이 샘솟듯 솟아난다고 적었는데, 일없는 사람은 마음만 바쁘면 공연한 일을 벌인다고 꼬집으신 부분이 일침(一針)이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바쁘다가 한가해진 틈을 즐기고 있는 저를 꼬드긴 친구에게 넘어가 봉사활동을 하는 동아리를 만들었던 것이 벌써 35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허정무위(虛靜無爲)>처럼 옛 성현의 글을 이어 소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옛글을 풀어내고 저자의 생각을 버무려 읽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돋보기를 들이대는 제 습관은 여기서도 의문점을 발견합니다. 금년 봄은 기온이 늦게 올라가는 바람에 봄꽃이 늦었습니다만 꽃이 피면서 기온이 급상승하는 바람에 일찍 지고 말아 섭섭하신 분들이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금년 같은 봄날과 인생을 비유해서 ‘인생의 봄날은 쉬 지나간다’고 새긴 <점수청정(點水蜻蜓)>입니다. 두보의 ‘곡강(曲江)’이란 시에 나오는 글입니다. 아름다운 봄날의 풍광을 그리는 시에서 꽃은 만발하고 잠자리는 잔잔한 수면 위로 꽁지를 구부려 점을 찍고 날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물속에서 유충상태로 지내다가 성충으로 우화하는 잠자리는 5천종이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데, 종류별로 다양하여 4∼11월 사이에 성충으로 우화하여 활동하나 대부분은 6∼10월에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성충이 되어 짝짓기를 한 다음에 수면에 알을 낳는 것이기 때문에 꽃피는 봄날 보다는 한여름에 알낳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작비금시(昨非今是)>의 의미를 그대로 읽으면 ‘어제가 잘못이고 오늘이 옳다’가 되는데 ‘지난 잘못을 걷고 옳은 지금을 간다’로 풀어냈습니다. 이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살펴서 잘못을 과감하게 걷어내어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길은 밝고 넓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방송을 통하여 타인의 약점을 캐고 이를 저급한 말로 비유하는 것으로 순간의 인기를 얻어냈던 방송인이 그때 뱉었던 말들이 독침이 되어 설자리를 잃게 되는 위기를 맞았다고 합니다. 같이 방송활동을 하는 자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선처해달라고 했다는데, 자식가진 부모가 언행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꼼수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또한 뿌린 씨앗대로 거두게 되는 것 아닐까요?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이른 <어묵찬금(語嘿囋噤)>편에서 저자는 인조 때 문신 신흠(申欽)의 글 “마땅히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當語而嘿者非也)(73쪽)”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1,100만명을 어떻게 죽일까?; http://blog.joinsmsn.com/yang412/12625273>는 투표에 적극 참여하여 시민들을 잘못된 길로 안내하는 정치인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보다는 히틀러가 노란색 별을 달고 수용소로 끌고가 가스실로 몰아넣는 동안 침묵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이제 평생 떼어버릴 수 없는 배지를 달고 마음을 옥죄는 고통 속에서 살아왔음을 지적하는 부분이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바로 우리가 맞고 있는 현실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 국경을 넘은 탈북동포들이 중국공안에 붙들려 북한으로 송환되면 수용소에 갇혀 비참하게 살게 되거나 심하면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당국에 탈북동포들에게 난민지위를 인정하도록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동포들이 맞고 있는 죽음의 위기상황에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외면하시는 분들이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