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옮긴이는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는 저자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주인공 앤서니 앱스터가 전하는 삶의 족적 어디에 이야기의 결말에 대한 힌트가 숨어있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스토리를 끌고 가는 토니(어쩌면 주인공 앤서니는 제가 이렇게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친근해서라기보다는 적기 편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부르겠습니다.)가 적고 있는 일종의 자서전입니다. 저 자신도 저의 삶의 기록을 정리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어 관심이 가는 대목입니다.

 

책은 간단하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1부에서는 토니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대학에 들어가고 여자친구를 만나고 헤어지고 그리고 결혼을 하고 또 이혼을 하고 이제는 나이 들어 은퇴생활을 하게 될 때까지 삶의 흐름을 술회하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젊었을 적에 같이 어울리던 4명의 친구들, 특히 에이드리언에 대한 토니의 설명은 마치 데미안을 떠올리게 합니다. 감성이 풍부한 싱클레어가 진정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데미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듯이 에이드리언은 토니에게 있어 데미안 같은 존재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네 명의 친구들의 성장기를 그리는 장면에서는 저자의 심오한 인문학적 사색의 깊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T.S. 엘리엇이 말하는 인생의 총체, ‘탄생, 성교, 그리고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보라는 영어교사 필 딕슨선생의 질문에 에이드리언은 “사랑과 죽음, 즉 죽음의 원칙과 충돌하는 에로스의 원칙”이라고 답변합니다. 그런가하면 역사의 조 헌트선생이 던지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토니는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입니다.(33쪽)”라고 답변하는데, 그는 자신에 주어진 세월을 살아낸 다음에는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101쪽)”을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저자가 1부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2부 마무리에서 드러나는 사실과 연관된 힌트를 곳곳에 숨겨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읽을 때 그런 연관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제가 아무래도 부족함이 많은 독자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저 처음 읽을 때는 저도 이들 나이에는 저랬는데 공감하는 대목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제 과거를 되돌아보는 나이가 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토니의 친구 세 사람은 서로의 결속을 다지는 상징으로 손목시계의 앞면을 손목 안쪽으로 돌려서 차고 다녔는데, 그것이 허세였던 것 같다고 회고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같은 모양으로 시계를 차고 다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허세였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2부는 젊었을 적 사귀었던 여자친구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죽은 다음 토니에게 500파운드와 친구 에이드리언의 유품 일기장을 남겼다는 변호사의 편지를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젊어서 사귀던 여자친구와 성격차이로 헤어질 수도 있는 문제이겠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현금과 유물을 상속하도록 유언을 남긴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1부에서 헤어진 베로니카가 친구 에이드리언과 사귀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고, 그리고 나서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은 밝히고 있기 때문에 베로니카의 어머니의 유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베로니카 어머니가 남긴 유물은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었는데, 이 일기장은 베로니카가 이미 가져간 상태입니다. 토니는 에이드리언이 남긴 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일기장을 돌려받기 위하여 연락을 끊고 지내던 베로니카와 다시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베로니카, 에이드리언, 그리고 토니 사이에 얽히고설킨 과거사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토머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 http://blog.joinsmsn.com/yang412/2081937>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키다는 우리가 사고와 기억의 오류를 범하는 이유 혹은 유형을, “1. 통계수치보다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더 솔깃하다. 2. 내 생각에 의문을 품기보다 확신하려 든다. 3. 세상에는 운과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있음을 간과한다. 4.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잘못 인식하곤 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해 생각한다. 6. 인간의 기억은 이따금 부정확하다.”의 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 기억이라고 한다면 그 기억을 잊을 수 있는 능력을 덤으로 주신 것은 기억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프리미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프리미엄을 자신에게 편리하게 활용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토니 역시 젊어서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에게 저지른 엄청나고 어리석은 실수를 베로니카를 다시 만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의 일부를 얻고서야 깨닫게 된다는 것인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자가 독자에게 전하려는 마지막 힌트를 저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토니는 자신이 보낸 편지 한 장이 친구와 옛 여자친구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기억의 바닥보다 더 깊이 파묻어버리고 잊혀지기를 원했지만, 스스로에게는 언젠가는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라 예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런 이유로 저자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고 정한 것이기도 하구요. 저자는 그런 해석이 가능한 힌트를 “뇌는 이따금씩 파편적인 기억을 던질 테고, 심지어는 기억의 묵은 폐쇄회로를 터주기까지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요새 내게 일어나고 있으니 경악할 노릇이다.(194쪽)”에 묻어두지 않았을까요?

 

과거에 깊은 생각 없이 던진 말 혹은 글이 부메랑이 되어 발목 잡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조신하게 하라는 선조님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젊었을 때의 시선으로 보면 한평생이 정말 긴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렇게 짧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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