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일곱 가지 죄악
대니얼 L. 샥터 지음, 박미자 옮김 / 한승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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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애매한 기억 때문에 누군가와 다툰 적은 없으십니까? 우리 옛말에 ‘서울에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서울에 가본 사람을 이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울에 가보기는 했는데 애매한 기억 때문에 우기지 못하고 있는데 서울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마치 가본 것처럼 큰 소리로 우기는 소리를 듣다 보면 꼭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경험은 없으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이 정확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 역시 제가 보고 들었던 것들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과연 사실일까요? 20년 넘게 기억에 관한 연구에 매달려온 대니얼 샥터교수는 <기억 일곱 가지 죄악>을 통하여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낱낱이 파헤치고 있습니다. 번역을 하신 박미자교수님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굳이 죄악이라고까지 할 이유는 없다 싶습니다만, 기억의 오류를 일으키는 이유를 정리하다 보니 일곱 가지가 중요하다고 보여진 까닭에 성서에 기록된 7 가지 죄악(탐욕, 폭식, 분노, 색욕, 나태, 자만, 질투)을 떠올렸는지 모릅니다. 브래드 피트, 모건 프리먼, 케빈 스페이시, 기네스 팰트로 등이 주연한 영화 <세븐; se7en>에서 데이빗 핀처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7가지 죄악처럼 기억의 오류도 죄악이라고까지 불러야 할까요?

 

저자는 기억이 일으키는 대표적인 오류로 소멸, 정신없음, 막힘, 오귀인(誤歸因),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의 7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기억의 오류는 일상생활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며 누구에게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합니다. 소멸이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억이 흐려지거나 손실되는 것을 의미하고, 정신없음은 주의하지 않았을 때의 경험을 기억하지 못함을 의미하며, 막힘은 기억한 정보가 머릿속을 맴돌며 생각나지 않는 인출의 문제를 의미합니다. 이들 세 가지 오류는 기억을 갈무리하고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누락이 발생하여 생긴다고 합니다. 한편 오귀인, 피암시성, 편향, 지속성 등은 수행오류에 해당하는 것으로 오귀인은 잘못된 출처에 기억을 할당하는 것으로 환상으로 본 것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이며, 피암시성은 과거의 경험을 상기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유도질문을 하거나 강한 암시를 주어 기억 자체가 새롭게 만들어지는 경우입니다. 편향은 현재의 지식과 믿음이 과거의 기억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며, 지속성은 마음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고통스러운 기억이 반복해서 떠오르는 경우를 말합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오류를 죄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성서에 나오는 7가지 죄악이 사실은 생존에 유익하거나 때로는 필요한 특징들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처럼 기억의 오류도 그와 같은 관점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면 과식은 배탈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나타내지만 우리의 신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충분한 음식을 먹어줘야 할 것이며, 빗나간 성충동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지만 개체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유전인자를 확산시키려는 본능이 강하여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기억의 오류 역시 진화의 산물로서 이를 통하여 기억이 가지는 적응적인 강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기억의 불완전한 본질을 탐색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며, 어떻게 기억의 해로운 영향을 줄이고 피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려고 했다(6쪽)”는 것입니다.

 

기억에 관한 연구는 뇌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베일을 벗어가고 있는 분야라서 용어에서부터 개념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기에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학문적으로 때로는 문학적으로 접근하여 독자의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습니다. 서문을 일본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기억의 오류를 주제로 전개하는 단편소설 <유미우라>를 인용하고 있어 첫 번 만남부터 깜짝 놀랐습니다. 게다가 앞서 설명한 기억의 오류 가운데 ‘막힘’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탈리아어에서부터 아프리카어 에스토니아어, 체이엔어까지 다양한 언어의 예를 들고 있는데, 그 가운데 가장 시적인 표현으로는 ‘혀끝에서 반짝거리는’이라고 번역되는 한국어 “혀끝에서 맴돌다”를 들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또 다른 한국관련 인용을 읽으면서 놀라고 당혹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0년 5월 31일자 뉴욕타임스 1면에 실린 한국전쟁 참전용사 에드워드 달리가 실제로는 참가한 적이 없는 대학살에 참여했다는 것을 비롯하여 자신의 전투공적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는 것입니다.(163쪽)” 이 사건은 피암시성에 의한 기억의 오류를 설명하는 사례로 인용되고 있는데, 과거사를 새롭게 인식하는 과정에서 특정인의 기억이 일으키는 사회적 반향에 조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억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기억의 신비는 많이 베일을 벗었지만, 아직도 갈길은 먼 것 같습니다. 특히 기억이 소멸되는 대표적인 질환, 치매환자가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기억의 원리에 관한 연구는 치매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될 것입니다. 기억의 오류 가운데 지속성의 경우는 오히려 사라지지 않는 기억으로 고통받는 경우인데, 이런 사례들을 보면, 기억이 한계가 있다는 점이 오히려 축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고들은 모든 것들이 기억으로 저장되어 생생하게 끄집어 낼 수 있다면, 쏟아져 나오는 기억의 폭포 때문에 오히려 질식하는 경우도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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