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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과학 - 뇌과학이 밝혀낸 의사 결정의 비밀
리드 몬터규 지음, 박중서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최근에 저는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휴대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동안 옵션을 포함해서 무료로 스마트폰을 제공하겠다는 제의가 여러 번 있었지만, 사용하던 휴대폰의 의무사용기간이 역시 마음에 걸리는 바람에 교체가 늦어졌습니다. 동료들은 얼리 어댑터(early adapter, 초기구매자)일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너무 늦었던 것 아니냐고들 합니다.
새로운 기기가 나오면 바로 사서 이용하는 사람을 얼리 어댑터라고 합니다. 주변에서도 신기해하며 또 부러워하는 시선을 보내기 마련입니다. 얼리 어댑터의 반댓말은 무엇일까요? 나름대로 얻어들은 바에 의하면 late adapter, slow adapter 심지어는 lazy adapter라고 부르는 분도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슬로우 라이프가 각광을 받는다는 점에서 슬로우 어댑터가 마음에 듭니다. 얼리 어댑터와 슬로우 어댑터는 각각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대비될 것 같습니다. 얼리 어댑터의 경우 남들보다 일찍 새로운 기기를 이용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되기는 하지만 사용법을 스스로 깨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는 점은 단점이 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슬로우 어댑터는 반대가 되겠지요? 그리고 보니 얼리 어댑터가 될 것이냐 아니면 슬로우 어댑터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은 개인의 특성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하루 일과 중 가장 어려운 선택은 점심식사를 하는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 하루를 되돌아보면 하루 일과가 선택의 연속이었다는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하루에 150번이 넘는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런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바로 그 궁금증에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이 버지니아 공과대학 물리학과의 리드 몬터규 교수가 쓴 <선택의 과학>입니다.
저자의 이름을 보자마자 세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이 떠올랐습니다. 몬터규가의 로미오가 적대하고 있는 카퓰렛가의 축제에 가지 않았더라면 줄리엣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고 아름다운 두 젊은이가 생명을 잃는 불행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의 선택이 두 젊은이의 죽음이라는 비극을 초래하였지만 궁극적으로는 피의 보복이 반복되어오던 두 가문이 화해하게 되었으니 종족입장에서는 다행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두 젊은이가 선택한 사랑과 죽음은 우연이었을까요? 아니면 운명으로 결정되어 있던 필연이었을까요?
어떤 종류의 개미는 방어기전으로 자폭을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런 능력은 몇 마리의 죽음으로 결과적으로는 종족의 생존을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선택에서는 종족보존보다는 사랑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만, 인간의 유전자에도 개인보다는 종족보존이 우선한다는 암호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스마트폰을 고르면서 다양한 의견을 들었습니다만, 주변에서는 대체적으로 자신이 사용하는 모델을 추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이폰을 사용하는 분은 아이폰을, 갤럭시폰을 사용하는 사람은 갤럭시폰을 추천하면서 각각 장점을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식입니다. 결국은 제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갤럭시폰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모든 선택은 대뇌에서 이루어지는 가치판단을 토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대뇌의 가치판단은 어떤 행위를 할 때 드는 비용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비교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용과 보상에는 유상, 무상의 범위까지 포괄하는 것입니다. 선택을 통하여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수익을 거두어야 하는 문제는 단순한 일상의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생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택의 비용과 장기적 이득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생명체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것입니다. 선택은 분자 수준에서부터 사회적 교환의 전략에 이르기까지 생물계의 모든 층위에서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을 통하여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물체의 의사결정과정에는 강화학습이라고 하는 일종의 자연적 정보반복주기가 마련되어 행동의 선택을 안내한다고 합니다. 즉, 목표탐색, 학습, 의사결정에 대한 접근 방식에 기반하는 네 가지 기본단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체의 선택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약물중독처럼 생존에 적합하지 않은 선택이 일어나는 것은 우연한 선택에 의하여 시작한 약물이 정상적으로 일어나야 할 과정의 안내신호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종의 소프트웨어의 업데이트가 비정상적으로 일어나서 오는 현상인 것입니다.
도박의 경우는 다소 다른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판단 및 의사결정기구를 활용하기 위하여 도박을 발전시켜왔다는 것인데요. 실제로는 인간의 도박성 게임실력은 대체적으로 시원치 않아서 우리의 가치판단 및 의사결정 기구를 자연스럽게 확인하고 대조하는 작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인간이 이길 가망성, 질 가망성 등 갖가지 통계적 가망성을 감지하는 능력이 최악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적 가망성이 전혀 없는 곳에서도 희망적인 가망성을 추론해내는데 선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선택을 하게 될까요? 심지어 세균조차도 단기적 미래와 과거의 가치를 따질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그 과정이 인간처럼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구성되어 있는 점이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 재조명을 받고 있는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생물진화의 동력은 자연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변이는 생물계로 하여금 대안적인 해결책을 탐색하게 만들었고, 선택은 되먹임을 제공했으며, 저장은 시스템으로 하여금 그중 성공적인 해결방법을 유지하게 만들었다.(315쪽)”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100년 뒤에 앨런 튜링에 의하여 진화는 정보처리에 관한 계산과정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진화생물학이 자리잡고 뇌과학이 발전하게 되면서 나온 계산 신경과학의 연구산물이라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생물학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계산에 대한 개념으로 보면 생물체의 구조와 기능은 사실상 생물학적 분자, 세포, 세포망 등을 통해 이용 가능한 물리적이고 화학적 특성으로 구현된 정보처리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계량과학의 핵심도구들이 발전해온 것이 과학혁명의 첫 번째 조짐이었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발전을 이끌어온 과학영역의 경계가 해체되어 교차되고 앞으로는 경제학, 사회학 등의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습니다. 역시 에드워드 윌슨이 주장한 통섭의 개념과 부합한다고 하겠습니다.
저자는 “당신은 왜 하필 이 책을 선택했는가?” 묻고는 “표지 디자인 때문에, 또는 서평 때문에, 또는 일찍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 놓았던 과거의 어떤 경험과 같은 무언가 더 상당한 이유 때문에 이 책을 선택했을 것이다.(9쪽)”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니 마치 전철노선도처럼 보이는 표지디자인 역시 선택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울의 지하철 체계가 복잡해지면서 이제는 목적지에 가기 위하여 아주 다양한 철도노선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환승을 최소화해서, 아니면 덜 붐비는 노선을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선택결과에 따라서 목표지점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를 수 있고, 앉아서 독서도 하면서 쾌적하게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 책에 대한 추천사를 쓴 정재승교수님은 이 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반응 몇 개를 소개하면, “선택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돋보인다.” “의사결정과정에 대한 인지과학과 신경철학적인 내용이 흥미롭다.”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6쪽) 등인데, 저는 이런 반응들이 모두 일리가 있다고 읽었습니다. 완벽한 뇌는 느리고, 잡음많고 부정확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제목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뇌과학으로 부터 물리학,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르다 보니 아무래도 전부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즉, 합리성과 효율, 후회와 실망, 신뢰와 배신 등 행동경제학의 여러 주제를 신경과학의 최신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어 단숨에 이해하기에는 한계를 느꼈다는 점에서 후자의 반응에 가까운 느낌이 남았다고 고백합니다.
거침없이 읽히되, 읽다가 자꾸 덮게 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법정스팀의 말씀대로라면 거침없이 읽히지는 않지만 자주 멈춰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역시 좋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선택을 해야 되는 순간,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