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이 부족하면 배를 빌려 저 언덕에 이르라 - 원효 나를 찾아가는 여행
박상주 지음 / 이담북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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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선친께서 불교에 심취하셨던 탓에 장례절차를 스님께 부탁드린 바 있었습니다. 49재를 모실 때까지 선친께서 다니시던 절에서 올리는 제에 참여하면서도 끝내 불교에 귀의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불교의 교리가 심오한 탓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상주박사님의 ‘원효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는 부제를 단 <힘이 부족하면 배를 빌려 저 언덕에 이르라>를 받아들고 나름 반갑기도 했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서 그 뜻을 새기는 일이 쉽지 않아 책을 모두 읽고서도 느낌을 적는 일을 차일피일 미루어 왔습니다. 불교경전이 한자어로 되어 있는 탓인지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주해하시는 분의 학문적 깊이가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원효대사라고 하면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제가 아는 전부라서 한줄 쓰기도 조심스럽습니다. 위키백과사전을 참고하면, 원효대사께서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길에 날이 저물어 당항성 근처의 무덤가에서 잠이 들었는데, 갈증 때문에 잠에서 깨어 손길에 닿는 그릇에 담긴 물을 달게 마셨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깨어보니 해골바가지에 더러운 물이 담긴 것을 보고 구토를 하다가 홀연히 “마음이 나야 모든 사물과 법이 나는 것이요, 마음이 죽으면 곧 해골이나 다름이 없도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龕墳不二). 부처님 말씀에 삼계(三戒)가 오직 마음뿐이라 한 것을 어찌 잊었더냐?”라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닫고 다시 신라로 돌아오셨다는 일화입니다.

 

원효대사는 당시 전하던 거의 모든 경론(經論)에 대해 주석(註釋)을 하여 100여 종의 저술을 남기셨다고 하는데, 20부 22권뿐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이 중 ≪대승기신론소≫ 2권, ≪금강삼매경론≫ 3권, ≪십문화쟁론≫ 2권 등은 원효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데, 원효 사상의 핵심인 일미(一味) 화쟁(和諍) 사상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께서 직접 주해하신 저서들 가운데 일상생활에서 귀감이 되고 수행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글들만 저자께서 가려 뽑아 불교의 수행과정에 맞게 체계적으로 재구성하여 번역하고 해설하였다고 합니다.

 

저자는 특히 수행을 삶의 긴 여행으로 여긴 듯, 열 개의 여행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첫 번째 여행은 ‘수행의 자세’로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을 바탕으로 하여 ‘수행을 위한 굳건한 마음자세를 확립하는 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여행은 ’수행의 마음자리‘로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를 바탕으로 수행을 위하여 청정한 마음자리를 얻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여행은 ’수행의 계율‘로 보살계본지범요기(菩薩戒本持犯要記)를 바탕으로 수행을 위해 필요한 계율을 몸으로 직접 익힐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네 번째 여행은 ‘수행의 본체’로 원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수행의 길에서 새겨야 할 말씀을 담았습니다. 다섯 번째 여행은 ‘수행의 단계’로 역시 원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수행을 실천하는데 도움이 될 말씀들입니다. 여섯 번째 여행은 ‘수행의 장애’로 이장의(二障義)를 바탕으로 수행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장애요인을 극복하는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일곱 번째 여행은 ‘수행의 지혜’로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를 바탕으로 수행과정에 필요한 지혜와 유식의 도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여덟 번째 여행은 ‘수행의 심화’로 화엄경을 풀이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바탕으로 수행과정에 꼭 필요한 우주와 나의 관계를 정립하고 ‘사람이 곧 부처’라는 인즉불(人卽佛) 사상에 눈을 뜰 수 있게 안내합니다. 아홉 번째 여행은 ‘수행의 나룻배’로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를 바탕으로 수행의 한 방편인 타력불교를 이해하게 되고 신심을 더욱 돈독하게 하는 길을 안내합니다. 열 번째 여행은 ‘수행의 귀일처’로 역시 원효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십문화쟁론(十門和爭論)을 바탕으로 수행의 귀결처인 한 생명의 출렁거림, 즉 일심의 바다에 들어가 상즉상입(相卽相入)의 묘미를 맛볼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저자의 주석을 제대로 이해하고서 인용하는 것인지 두려운 점이 있습니다만, 한 구절만 인용해보자면, ‘제 모영을 잃는 고통을 감수하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깨닫고 보면 여기 속(俗)이랄 것도 없고 저기 진(眞)이랄 것도 없고, 더러운 세계인 예토(穢土)랄 것도 없고 깨끗한 세계인 정토(淨土)랄 것도 없네. 본래 이 모든 것은 일심(一心)이라서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둘이 아니네.(以覺言之 無此無彼 穢土淨國 本來一心 生死涅槃 終無二際)” 저자는 이 구절을 “근원적인 진리와 절대 세계에서는 부처와 중생이 하나이고, 진과 속이 하나이지만, 유한적인 현상의 상대 세계에서는 부처와 중생이 분명히 차이가 나고, 진과 속이 확연히 구분된다.(187쪽)”고 풀이하였습니다.

 

이 구절을 인용한 것은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둘로 나뉘어 기름과 물처럼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하는 현상이 안타까워서입니다. 바로 원효의 일심사상(一心思想)에 바탕을 둔 화쟁사상(和諍思想)의 의미를 새삼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때문입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원효는 현묘지도(玄妙之道)의 민족고유사상과 화엄학 및 유식학 등을 바탕으로 일군 일심사상을 전개하여 당시 여러 갈래로 분분하던 각 유파의 불법이론들을 일미(一味)의 불법대해(佛法大海)로 귀일하쟁(歸一和諍)시키는 대업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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